그렇게 얼마 있지 않아 건물 주인이 바뀌었고 홍 회장의 사무실이라는 곳에서 안내문이 상가 세입자에게 전달되었다. 건물주가 바뀌었고 월세를 삼십 퍼센트 인상하며 건물 외관을 공사하겠다는 안내문이었다. 특히 건물 노후화로 건물에 빗물이 새니 옥상에 지붕을 설치하는 공사를 하면서 오래된 건물 타일을 대리석으로 교체 작업을 한다는 안내문이었다.
안내문을 받아 든 상가 직원들이 부동산 문이 닫혀있으니, 손님이 뜸한 우리 매장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치킨집 송 사장이 답답한 마음에 이곳저곳 상가를 찾아가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전한 모양이다. 이왕 모이는 김에 카페에서 한날 함께 모여 세입자의 의견을 모아보자는 취지였다. 다행히 비어 있는 칸막이 룸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상가의 모든 세입자가 모였지만 부동산 김 집사만 빠져 있었다. 치킨집 송 사장이 전화를 여러 번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송 사장이 격앙된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다.
“이거 상가 월세를 하루아침에 주인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많이 올리는 게 말이나 됩니까? 법이 있고 상도덕이 있는데 주인 맘대로 아닙니까.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월세도 문제지만 공사를 한다고 하면 최소한 몇 달은 걸릴 텐데. 그동안 우리 장사는 어쩌라고?”
“뭐 해준 거라곤 쥐뿔도 없으면서 돈만 더 받겠다는 심보 아닌가요?”
“이 도시에서 제일 부자면 뭐해요. 이렇게 서민들, 자영업자들 등쳐서 대학에 장학기금 전달하면서 온갖 생색도 내고 세금도 감면받는 거 누군 모를까 봐.”
“장사라는 게 맨날 잘된답니까. 안될 때 생각하면 월세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올리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상가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고 얼굴들이 붉으락푸르락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상가 사람들끼리 한참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때 부동산 김 집사가 문을 빠끔히 열며 들어왔다.
모두 그의 모습에 이목이 쏠렸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홍 회장님을 뵙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월세도 한꺼번에 일괄 인상하고 외관 공사도 한다니 나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월세도 주변 상가에 비해 저렴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꺼번에 인상한다는 게 너무 심하다 싶어 말씀드렸고.”
부동산 김 집사는 말을 살짝 끊었다가 뜸을 들이고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여름만 되면 물이 새서 물난리로 난리 난리였으니 옥상을 지붕으로 덮어 물난리를 차단해 준다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이 층에 신 사장님 학원엔 어려움이 많았잖아요. 일 층 세탁소 강 사장님네도 안쪽에 작은 방 천장으로 물이 새서 고생하셨잖아요. 물론 다른 사장님네도 모두 불편했지요. 특히 매장 운영하는 카페와 치킨집 송 사장님은 공동 화장실 사용에 어려움이 많았지요. 매장 손님이 화장실 이용이라도 할라치면 불편했는데 이번 외관 공사를 하면서 화장실 보수 공사도 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집사는 상가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쭉 자신의 이야기를 해 놓곤 모두를 찬찬히 쭉 훑어보았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도 있지만 건물 주인이 바뀌면 방법이 없어요.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하면 건물주도 큰돈 들여 공사하고 건물도 새것으로 바뀌고 그러면 아무래도 손님이 더 늘 것이고…….”
상가의 사장들 얼굴이 서서히 굳어지고 있었다. 거리낌 없이 불만을 제기하던 분위기가 금세 싸늘해졌다. 그런 분위기를 알아차렸는지 김 집사는 다음 말을 이어 갔다.
“뭐 내가 홍 회장의 입장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 같아 저도 마음이 그러네요. 회장님께서 조만간 상가에 들른다고 했으니 각자 말씀들을 잘 나누어 보시죠.”
김 집사의 말이 끝나자, 그동안 말 한마디 없이 지켜보기만 하던 세탁소 강 사장이 팔뚝에 시퍼런 용 문신을 보이며 탁자를 내리치고는 한마디 남긴 다음 밖으로 나가버렸다. 모두들 굳게 입을 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