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송 사장은 울분을 터트리며 같은 욕을 반복했다. 이미 얼굴은 붉어졌고 눈빛은 날카로워져 있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드러낸 세탁소 강 사장은 가볍게 목례로 알은체할 뿐이었다. 다만 그의 꽉 움켜쥔 주먹과 결연한 의지가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잠시 볼일을 보고 오는 길에 열 발짝쯤 앞에 서 있는 부동산 김 집사가 눈에 띄었다. 알은체하려는 손을 이내 내렸다. 웬일인지 어깨가 축 처져 보여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홍 회장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상가 건물 앞길 건너편에 서서 그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건물을 올려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보행자 신호가 들어왔음에도 그는 건너지도 않았다. 뒤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나도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유동 인구가 참 많은 날이다. 건물 3층에는 임대라는 붉은 글씨와 함께 2~3층 병의원 특별우대, 그리고 추천 진료과가 쭉 나열되어 있었다. 바로 밑에는 1층 약국 임대 우대라는 말도 쓰여 있었다. 약국이라는 글씨를 보자 마음에 작은 일렁임이 일었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아내 영숙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왜 전화를 안 받아!’ 그제야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무음으로 해 놓은 걸 잊고 있었다. 바로 그때 홍 회장 사무실 여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렇게 약속 시간 5분 전에 홍 회장 사무실에 도착했다. 여직원은 미안한 표정을 하며 황색 서류봉투를 건넸다.
“회장님께서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중앙통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에 주차한 차 문을 열려다가 차량 앞면에 이상한 표식을 발견했다. 노란색 바탕에 적색 글씨로 된 주차위반 경고 스티커였다. 운전석 정면에 붙어 당장 떼지 않으면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스티커 귀퉁이를 손톱으로 살짝 올리고 떼는데 고약스럽게 윗부분만 떼지고 그대로 하얀 흔적이 남았다. 다시 떼기를 여러 번, 역시 쉽지 않았다. 다시 손가락으로 스티커를 잡았으나 잡은 부위만 떨어졌다. 점점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약속 시간을 정한 홍 회장은 정작 그 자리에 없었다. 들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황색 서류봉투를 확 집어 던졌다.
“아이 씨팔!”
분이 풀리지 않았다.
내가 다시 홍 회장의 사무실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홍 회장과 직접 통화했고 약속 시간을 정했다. 시내 중앙통에 도착해서 그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1층은 약국,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 보석 상점이. 2층과 3층에는 병의원이 각각 두 곳씩 총 네 개, 그리고 4층에는 홍 회장의 사무실과 창고가 있었다. 층층이 외부인 출입 방지를 위한 철창문이 설치되어 있다. 엘리베이터 없는 오래된 건물이지만 바닥은 쓸고 닦아 윤이 날 정도였다. 4층 사무실 겸 장학회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홍 회장과 함께 앉아 있던 부동산 김 집사가 살짝 놀라는 모습으로 눈인사를 했다.
“그럼 저는 자리를 잠깐 비우겠습니다.”라며 일어서려는 김 집사에게 홍 회장은 고개를 까딱였다.
사무실 여직원이 녹차가 담긴 종이컵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따뜻한 기운이 몽실몽실 올라왔다. 홍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인수한 상가건물에 대한 생각을 내게 말했다. 그 건물을 처음 매수할 때부터 메디컬 센터로 생각했다는 말과 함께 2층과 3층은 병원이 들어올 때까지 상가 임대를 하지 않을 거라 했다. 또한 일전에 준 서류에서처럼 기존 상가 입주자의 계약연장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계약 종료 후 상가의 원상복구를 요구했다. 단, 미리 상가를 비워준다면 원상복구에 대한 것은 예외를 둔다고 했다.
“그럼 우리 권리금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한참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던진 질문에 홍 회장은 그렇게 질문할 줄 알았다는 듯 입가에 비열하고 잔인한 미소를 살짝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