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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꺼지지 않는 불꽃

여덟 번째 이야기 10-08 Dark

by 운담 유영준




여름 장마철을 앞두고 건물 외관 공사는 끝이 났다. 중간중간 떨어져 나간 타일은 어느새 대리석으로 새 옷을 갈아입었다. 한마디로 깔끔하고 새로운 건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요리학원 신 원장은 완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옆 건물로 이사했다.

나는 짧은 장마가 끝나고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디저트 카페에 성수기가 찾아온 것이다. 하루에 과일빙수 백여 그릇을 만들어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특히 특제 아이스크림을 사용한 과일빙수가 인기였다. 아내 영숙의 힘들다는 투덜거림은 현금을 만지는 즐거운 비명에 묻혀 버렸다. 더 이상 쏟아지는 주문을 감당하기 힘들어 시즌 아르바이트 두 명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 년만의 여름 무더위를 정신없이 보냈다.

어느새 문턱까지 다가온 가을을 맞았다. 대지를 달구던 여름의 태양은 온데간데없고 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한 공기가 긴팔을 찾게 만들었다. 동해바다, 동해바다 외치던 아이들, 아내 영숙과 삼 일간 때 늦은 휴가를 다녀왔다. 그리고 삼 일간 문에 붙은 휴가 안내문을 떼어 버리고 청소를 열심히 했다. 그날따라 영숙은 먼지를 닦아 낸다며 그릇을 닦던 중 커다란 빙수 그릇을 와르르 떨어뜨리며 네 개나 깨 먹었다. 그래서인지 영숙의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다.


“아저씨, 옆에 치킨집 안 열어요?”

문을 빠끔히 열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내게 물어왔다. 시간을 보니 저녁 시간이라 이미 출근해서 한창 청소하며 영업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밖으로 나가 봤는데 전면 점포에 우리 매장과 휴대전화 매장만 불을 켜 놓고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휴대전화 매장에는 여직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다른 곳은 문을 열어 보았으나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문제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궁금한 마음에 건물을 죽 돌아보았다. 대로 안쪽에 있는 세탁소도 부동산에도 간판 불까지 끄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부랴부랴 상가 임대 때 받았던 연락처를 간신히 찾아 부동산 김 집사에게 전화를 했다. 역시 안내문도 없이 문을 닫고 간판 불까지 꺼진 상태라서 그런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장님, 옆에 치킨집 안 열어요?”

“부동산 문이 잠겨 있네요.”

“세탁소 언제 열어요? 옷 찾아야 하는데.”

벌써 며칠째 매장 문을 빠끔히 열고 물어오는 손님들이 여럿 생겨났다.

“무슨 일이래. 걱정되네.”

잔뜩 근심과 걱정 어린 얼굴로 아내 영숙이 나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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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창밖에 요리학원 신 원장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여 급히 밖으로 나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시간 되면 차 한잔하고 가라는 말에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신 원장이 자리에 앉자 자연스럽게 영숙이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싼 그녀는 홀짝홀짝 커피를 마실 뿐이었다.


“학원은 잘돼요? 요즘 학원생들이 자주 이곳에 오던데요.”

영숙이 먼저 말을 꺼내며 친밀감 있게 어색한 분위기를 만회하려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말없이 커피 맛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한참 만에 신 원장이 꺼낸 말에 나와 아내는 굳어 버렸다.


“아직 듣지 못하셨는가 보다. 건물주가 이 건물을 메디컬센터로 바꿀 거라 한대요. 건물 세입자 모두 내보내고 2층과 3층은 병원을 1층은 약국으로 바꾼다고. 그래서 우린 뒤도 안 돌아보고 옆 건물로 옮긴 거예요. 아직도 2층과 3층은 비어 있잖아요. 제가 알기로 여러 곳에서 임대를 요청했는데 홍 회장이 거절했다고 하던데요. 아마 1층에 계신 사장님들한테도 말한 모양이던데.”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때 세탁소가 문을 열었다. 맡겨 놓은 세탁물을 찾으며 강 사장에 대해 물었지만 그의 아내는 똑 부러지게 대답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 부동산과 치킨집이 시간을 두고 문을 열었다.





☆ 매주 수요일에 연재합니다. 관심과 애정에 감사합니다. 운담 유영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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