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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산 최규철 Sep 11. 2024

잘못된 것일까, 다른 것일까?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할까? 근사한 아침을 먹고 출근하던지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하던지 선택은 자유다. 내가 아는 지인은 늘 아침을 먹지 않고 생활한다고 한다. 하루에 2끼 먹는 것이다. 건강에 문제가 없냐고 해도 오랜 습관이라 괜찮다고 한다. 대신 점심을 일찍 먹는다고 한다. 늘 한 시간 전에 출근해서 책을 보던지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너무 좋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아홉 시 정각이 되면 항상 나타나는 직원이 불편하단다. 그 직원이 실제로 일에 몰입하려면 최소 30분은 그냥 지나간다. 근로시간을 철저히 따지면서 어영부영하는 시간(idling time)은 왜 생각하지 않는가? 불만이다. 그 직원은 회사와 한 계약이 9시부터이니 9시 출근한 것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일을 계약관계에서 판단해서 자기 행동을 정하는 것이다. 그 지인처럼 직장생활을 내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늦게 대학원 문을 두드리고 만학도의 길을 걷고 있다. 강의 시작 전에 시간이 있어 중앙도서관에 갔다. 도서관 문이 닫혀 있었다. 어 이상하네, 문 앞 안내 표시에는 개방 시간이 이미 지났는데. 마침 테이블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은 학생이 있기에 물었다. "혹시 이 문이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문이 맞는 것 같은데 그런가요? 왜 안 열리는지". "네, 맞아요. 아직 시간이 안 됐나 보죠". "아 그런가요? 그럼 언제 여는지 아는지?" ‘"거야 내가 모르죠". 어 말이 너무 퉁명스럽다. 어 저도 잘 모르겠네요.라고 하면 되지 왜 이렇게 말을 세게 하나. 언짢았다. 외국 사람하고 생활을 오래 해서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대부분 나이하고 상관없이 참 부드럽게 말하는 경험을 했는데. 이 친구는 왜 이렇게 화난 것처럼 이야기할까? 말을 이쁘게 해달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짢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기대하는 것이 무리한 생각일까? 잘못하면 꼰대 소리 들을까 봐 더 이상 묻지 않고 그 자리를 떴지만 먼발치에서 그 친구를 또 한 번 쳐다보게 된다. 자신의 공부시간을 방해해서 짜증이 났나... 인성이 중요하지 저렇게 공부만 잘하면 사회에 무슨 보탬이 될까? 생각이 더 나간다. 공부 잘하면 많은 것이 용서되는 가정이 문제이고 그것을 교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코칭을 공부하면서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볼 시간을 가진다. 부모님 말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 가장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이 누구인가? 나를 가장 성장하게 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러나 쉽게 떠오르는 것은 나에게 상처 주고 실망을 준 사람이다. 역으로 내가 직무상이지만 힘들게 하거나 상처 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사람 관리하면서 깨달은 것은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 준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이다. 내 편이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탁월한 리더는 칭찬은 공개적으로 책망은 따로 불러서 일대일로 한다. 하지만 반대로 칭찬은 일대일도 하고 책망은 여러 사람 앞에서 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게 된다. 아무리 리더십을 강조해도 교육 따로 행동 따로인 것이다.      

 코칭을 하다 보면 길을 잃을 때가 있다. 프로세스대로 해야 하는 데 생략되든지, 나의 에고에 빠지는 경우이다. 고객은 모를 수도 있지만 나는 안다. 하지만 곧 깨닫게 된다. 고객이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 나의 오산이라는 것을. 그럴 땐 잠시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본래 코칭 주제로 다시 돌아가는 문을 열면 된다. 의외로 선배 코치들은 고객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한다. 타인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의 실마리를 깨닫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삶의 루틴이 있다. 나도 자기 전에 5분 명상을 시도하고 깨어서는 코치 고수에게 배운 대로 나만의 루틴을 지키려고 한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이 절망하는 것은 지금의 고통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내일의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판도라의 상자에는 희망이 남아 있었는데, 내일의 희망이 없다면. 이런 느낌은 지옥이다. 인간은 타인의 눈길에서 지옥을 경험한다고 했던 사르트르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 다짐해 본다, 남의눈을 의식하는 데서 벗어나는 게 나의 자존감을 세우는 길이다. 오늘따라 맑은 하늘이 더 맑아 보이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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