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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담

その夏、私たちが残したもの

by KRG




“ 야야, 빨리 가자!! ”

히노테는 마사키, 유우마, 레이, 류토와 함께 학교의 담을 넘고 있다. ( 타츠야는 ‘ 반장이 모범을 보여야지! ’ 라고 말하며 제안을 거절했고, 사토시는 대답을 안 하며 그저 책을 읽었다. ) 현재는 점심시간, 수업이 다시 시작될 때까지 대략 30분이 남았다. 챙겨 온 도시락이 다 맛이 없어서 그들은 현재 유히야로 향하고 있다.

류토가 소리치자, 유우마가 그의 입에 손을 두어서 그의 목소리를 줄였다. 마침 멀리서 어느 선생님이 학교에서 나와 그들의 뒤를 지나쳤다. 히노테는 유우마의 순발력에 엄지를 올렸고, 그는 곧 마사키의 도움으로 담을 넘었다.



“ 자, 일로 와봐. ”

마사키가 두 손을 뻗어 히노테의 몸을 붙잡았다.

“ …야! 나 혼자 올라갈 수 있어! 이거 놔…! “

히노테가 발버둥을 쳐도 마사키는 그를 무시했다. 마사키는 두 팔을 번쩍 하늘로 올려서 히노테를 손쉽게 들어 올렸고, 히노테는 으악 소리치며 담 위에 앉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바닥을 내려보았다. 꽤나 아찔한 높이였다.

“ 어떻게 내려가?! ”

그가 흥분하며 소리쳤다. 그는 다리를 왔다 갔다 앞뒤로 흔들며 담에 콩콩 부딪혔다. 그의 얼굴은 이미 가관이었다. 그의 피부는 파랗게 질린 채로, 입만 벌어져 있었다. 어쩔 줄 모르겠다는 당황한 마음이 그의 가슴을 철렁거리게 했고, 그는 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읏챠. ”

레이가 마사키의 도움으로 담 위에 앉았다. 히노테 옆에 자리를 잡은 레이는 그의 표정을 보고 풉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히노테의 표정이 볼 만 하긴 했다. 히노테는 고개를 돌려 레이를 넋 나간 듯 바라보았다.

“ 기다려 봐, 내가 먼저 내려갈게. ”

레이가 담 아래로 뛰어내릴 준비를 했고, 히노테는 그를 말리며 소리쳤다.

“ 야, 진심으로?! 이거 사람 죽어!! ”



레이는 히노테의 걱정을 무시하며 담 아래로 폴짝 뛰어 내려갔다. 히노테가 으악 소리를 지르는 동안 레이는 땅에 도착했다. 당연히 멍 하나 없이 무사했고.

“ 봐봐! 생각보다 안 높다니까. ”

주저하는 히노테 옆으론 그의 친구들이 담을 넘어 땅으로 뛰어 내려갔다. 곧 히노테와 마사키를 제외한 모든 남학생들이 학교 밖 땅에서 히노테와 마사키를 기다렸다. 다른 아이들이 담을 넘는 것을 모두 도와준 마사키는 스스로 담을 짚고 올라가 히노테 옆에 앉았다.

“ 왜 아직도 안 내려갔어? 설마… 무서워하는 거? ”

마사키가 피식 웃으며 물었고, 히노테는 거의 울먹이는 눈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 워워~ 같이 내려가면 되잖아. ”

마사키가 히노테의 손목을 붙잡고는, 히노테가 반응하기도 전에 담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히노테는 눈을 질끈 감았고, 곧 약간의 충격이 그의 몸을 통과했다. 그가 눈을 뜨자, 그와 마사키는 이미 학교 밖 땅을 밟고 있었다.

“ 거 봐, 안 무섭지? ”

히노테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가 그의 삶에서 담을 넘어 본 적은 없다. 이 모든 경험, 점심시간 학교에서 도망치는 경험, 담을 넘어보는 경험은 히노테에게 마냥 새로울 뿐이었다.



“ 안 놀려, 안 놀려. 됐고 빨리 유히야 가자, 응? 나 배고파 죽을 것 같단 말이야! 수업 늦게 생겼어! ”

류토가 히노테의 홍조를 보고 웃은 뒤, 유히야의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다른 남학생들 역시 류토의 성급함에 맞춰 주기 위해 뛰기 시작했고, 히노테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히노테는 멀리 못 가 체력이 바닥났지만.






“ 시카 누나! ”

마사키가 웃으며 유히야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그는 재빨리 진열대에서 빵과 오니기리, 샌드위치를 잡기 시작했다. 유히야의 구조에 익숙한 마사키는 앞을 거의 보지도 않고 음식을 잡을 수 있었다.

“ 빨리 계산 좀 해줘! ”

그가 다급히 음식들을 계산대에 올려두었다. 시카는 치고 있던 기타에서 시선을 떼며 마사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썹 하나를 올리고 물었다.

“ 너, 학교- ”



쾅!



마사키를 뒤따르던 남학생들이 미닫이 문을 쾅 열고 유히야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소리가 시카의 말을 끊었다. 그들은 숨을 가쁘게 내쉬며 땀을 손으로 닦았다. 시카는 전혀 놀라지 않고, 오히려 뻔하다는 듯이 그들을 보았다.

“ 또 너네냐? ”



시카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히노테가 숨을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쉬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곧 있으면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에 시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부축했다.

“ 또 담 넘었지, 또? ”

시카가 어휴 한숨을 내쉬며 히노테를 가게 내 의자에 앉혔다. 히노테가 쓰러지듯 테이블에 엎드렸고, 유우마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이 담긴 페트병을 그에게 건넸다. 히노테가 뚜껑을 연 뒤 물을 마시기 시작했고, 유우마는 그의 옆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았다. 한편 마사키는 한 번에 결제를 하기 위해 아이들로부터 돈을 걷기 시작했다.



“ 도시락 메뉴가 우엉조림이랑 피망 볶음인데요?”

시카는 마사키가 모은 돈을 받고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 우엉조림 ’ 과 ’ 피망 볶음 ’ 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시카는 잠시 멈추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린 뒤 웃으며 계산을 계속했다.

“ 음… 그런 거면 인정이다. “



그들의 대화는 히노테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눈은 질끈 감고 이마에 손을 짚은 채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었다. 유우마는 그런 히노테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 네가 갖고 있던… 헤르만… 어쩌고 증후군은 원래 이렇게 심각한 거야? ”

히노테는 대답을 하기엔 숨을 쉬는 데에 바빴다. 유우마는 순간 질문을 한 것을 후회했다.



“ 다른 사람들 사례로는… 30대나, 일찍이면 20대에… 증상 생기는데. ”

시간이 조금 지나자, 히노테는 중간중간 숨을 쉬며 말을 꺼냈다. 계산하는 남학생들을 보던 유우마는 그의 설명에 귀를 열고 경청하기 시작했다.

“ 나는 일찍 나타난 거지… 워낙에 몸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대부분 45에서 55살 사이에 죽는다는데… 나는, 글쎄다. “

히노테가 호흡의 안정을 찾자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는 유우마에게 물통을 돌려주며 짧게 고마워했다.



유우마는 히노테가 잡고 있던 물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래, 히노테의 증후군은 결코 즐거운 주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노테는 늘 웃었다. 마치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마치 괜찮다는 듯이.

그 모습이 유우마의 가슴을 이상하게 아리게 했다. 누군가는 애써 외면할 수도, 혹은 가볍게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우마는 알고 있었다. 그 웃음이 얼마나 단단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얼마나 많은 감정을 삼켜야 가능한 것인지.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적어도 자신만은, 히노테의 그 거짓 없는 웃음을 지켜주겠다고.



히노테는 고민하는 유우마를 보고, 그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유우마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 작은 미소를 짓고 있던 히노테를 바라보았다.

“ …내가 좀 심한 질문을 한 건 아니었어? “

히노테는 땀을 검은 후드 집업의 소매로 닦으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눈빛엔 피곤함도, 약간의 짓궂음도 섞여 있었다.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검은 후드 집업을 입는 바람에 체온이 높아져서 더 힘든 걸 수도.

" 어, 심했어. "



유우마는 당황해서 히노테를 쳐다봤다. 그러자 히노테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 장난이야, 질문 자체는 심하지 않았어. 그냥 궁금했던 거니까. 그래도 내가 죽어가고 있는데 질문을 해야겠냐? “

“ 앗… 그, 내가- ”

“ 사과는 됐어, 물 빌려 줬으니까 봐준다. ”

히노테는 유우마의 당황함에 하하 웃었다가 유우마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는 머리를 푼 뒤 다시 반묶음으로 묶으며 질문했다.



"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반응이랑 질문이 뭔지 알아? “

유우마는 입을 다물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 불쌍하다는 말. 그리고 너무 과하게 괜찮냐고 묻고 걱정하는 거. "

히노테는 손으로 새로 묶은 머리를 다듬으며 한숨을 쉬었다.

" 물론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 그래도 계속하면 짜증은 나거든. 체육시간만 되면 ‘ 괜찮아? ’, 목마르다고 하면 ‘ 괜찮아? ’, 덥다고 하면 ‘ 괜찮아? ’. 마음은 알아주지만… 그래도 적당히 해야지. “



유우마는 속으로 히노테의 말을 받아 적으며 집중했다.

“ 그러니까… 내가 이 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만 보이고 싶지는 않아. 그냥 나도 똑같은 사람인데, 자꾸 병이 나를 정의하는 것처럼 느껴진달까. “

유우마는 히노테의 말을 곱씹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도 처음에는 히노테를 ‘ 증후군을 가진 친구 ’ 나 ‘ 알비노인 친구 ’ 로만 인식했던 것 같다. 하지만 히노테는 언제나 농담을 했고, ( 오히려 자기 피부와 증후군에 대해 농담했다. ) 좋아하는 것도 많았고, 짜증도 내고, 열심히 공부도 했다. 증후군과 백색증이 히노테의 전부가 아닌데도, 사람들은 늘 그걸 먼저 떠올렸다.

" 그러면… 넌 사람들이 어떻게 대해줬으면 좋겠어? “



히노테는 잠시 생각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 음… 그냥? 평범하게? 병이 있든 없든 난 히노테니까. 너무 신경 써서 대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말고. 지금처럼 네가 나한테 장난치고, 말도 편하게 걸고, 같이 놀아주는 거. 그게 제일 좋아. 며칠 전에 마사키가 나한테 장난쳐서 사토시랑 싸운 것도 비슷한 거지. 마사키의 장난처럼 약간의 장난은 괜찮거든. 계속하면 몰라도! "

유우마는 히노테의 말을 듣고 하하 웃었다.

" 그래, 알겠어. 사토시도 이해해줘야 할 텐데. “



유우마가 다시 입을 열어서 말을 꺼냈다.

" 근데, 너 오늘 좀 안색이 안 좋긴 해. 진짜로. 점심 아직 안 먹어서 그런 거 아니야? 배고프다고 찡얼거리더니~ “

히노테는 순간 멍하더니, 곧바로 푸하하 하고 웃었다.

“ 벌써 장난치는 거야? 응용력 좋은데? “

유우마도 따라 웃으며 생각했다.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거창한 위로나 특별한 배려가 아니었다. 그냥, 언제나처럼 곁에 있는 것.



“ 사실 최근 몸이 조금 더 안 좋아지기는 했어. 피도 쉽게 나고,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그런데 뭐, 참아야지. ”

히노테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자, 유우마는 위로의 의미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마사키가 음식들을 두 손으로 힘겹게 들며 테이블로 향했다. 그는 계산된 음식들을 모두 테이블에 떨어뜨린 뒤 히노테 옆에 앉았다.

“ 뭐야, 뭔 얘기해? 아, 히노테 괜찮아? 죽을 것처럼 보이던데. ”

다른 아이들이 테이블 근처 의자에 앉아 음식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마사키의 질문이 나오자, 그들은 히노테로 시선을 돌리며 집중했다. 그들의 표정에는 어딘가 걱정스러운 기색이 묻어났다.



히노테는 순간적으로 대답을 꺼냈다.

“ 응, 괜찮아! 많이 아프진 않아. ”

유우마는 흘깃 히노테를 쳐다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옮겼다. 히노테가 ‘ 괜찮아 ‘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 같았다. 별로 좋은 습관처럼 보이지 않았다.

유우마는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생각했다. 히노테가 당연하다는 듯이 괜찮다고 한 이유를. 그저 ‘ 익숙해져서 ’ 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유우마에게는 최근에 힘들다고 말했으니까. 그럼 왜 마사키에게는 가리는 걸까?







큰일이 났다. 유히야에서 밥을 먹는 동안 밖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유히야에서는 우산을 팔리가 없었다. 먹구름이 짙게 피워져 걱정이 자랄 틈도 없이 비가 쏟아졌다.

“ 야, 어떡해? 이렇게 학교에 돌아가면… 선생님이 우리 옷 젖은 거 보고 바로 눈치채실 거 아냐! 밖에 나갔다 온 거 들키겠네, 어떡해... ”

류토가 호들갑을 떨며 소리쳐서, 마사키는 그의 머리에 손을 얹어 류토의 흥분을 약간 가라앉혔다.



“ 지금 혼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비가 무슨 폭포처럼 내린다니까? ”

레이가 미닫이문을 살짝 열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세찬 빗방울들이 그의 머리에 투둑투둑 떨어져서, 그는 으악 소리치며 고개를 뺐다. 이미 유히야 안으로 빗물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는 곧바로 쾅 문을 닫았다.

한편 히노테는 후드를 머리에 쓰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폐의 컨디션이 안 좋은데 감기라도 걸리면 곤란하다. 다른 아이들도 히노테의 증후군이 떠올랐는지, 외투처럼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그의 몸에 둘러쌌다. 시카는 카운터에서 파란색 담요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담요의 부드러운 감촉이 히노테의 볼에 조금씩 닿았다.



그렇게 아이들은 학교로 뛰어갈 준비와 계획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계획은 간단했다, 어차피 선생님한테 들키게 생겼으니 당당히 정문으로 뛰어가는 것이다. 담을 넘는데 시간을 버릴 필요가 없다.

“ 그럼… 준비 됐지? 문, 문 연다? ”

류토가 미닫이 문을 두 손으로 확 열었다. 남학생들은 가게 안으로 비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히노테는 미닫이문을 다시 닫았고, 남학생들은 비를 뚫고 학교를 향해 뛰어갔다.



비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타고 스며들었다. 바닥에 튀어 오르는 빗방울들이 신발을 적셨고, 아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빗속을 내달렸다.

히노테는 담요를 깊숙이 여미고 조용히 숨을 골랐다. 다른 아이들은 웃으며 소리쳤지만, 그는 속으로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후드 너머로 들려오는 거센 빗소리와 거친 숨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교문 앞 선생님의 발소리.



" 야야야! 가자 가자! "

마사키가 앞장섰고, 레이와 류토가 뒤를 따랐다. 유우마는 히노테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그의 옆에서 가볍게 뛰었다. 히노테도 한 발, 한 발, 물웅덩이를 피하며 뛰었다. 숨이 거칠어졌지만, 아이들이 자신을 돌아볼 때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말했다.

학교 건물이 점점 가까워졌다.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들러붙었고, 하늘빛 담요는 축축하게 무거워졌다. 하지만 찝찝하게 끈적거리는 피부와 차가운 빗방울, 꿀꿀한 기분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이 순간이 싫지만은 않았다.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 모두가 함께 뛰고 있었다.

“ 야아, 뛰어 뛰어-! ”



그들은 정문을 지나 뛰어가, ‘ 야!! 너희들 뭐야!! ’ 라고 소리치는 선생님을 무시하며, 학교 건물로 이어지는 문을 밀어 열었다. 안쪽에서 환한 복도의 불빛이 쏟아졌다. 아이들은 젖은 신발과 축축한 양말을 끌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 너희들. "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젖은 교복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채, 담임 선생님의 시선을 마주쳤다.



아무도 변명 따위는 하지 않았다. 빗물이 계속 떨어져 복도 바닥에 작은 웅덩이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짧은 침묵을 깨듯, 류토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우리, 걸렸네. "

순간, 모두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젖은 머리카락과 앞머리 사이로 서로 눈이 마주쳤다. 피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후련했다.



“ 너희 다섯 다… 에휴, 벌 받아야지… 교내 청소하자, 응? 복도랑 화장실. ”

선생님이 히노테의 상태를 확인하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담요와 외투를 걷어내며, 속에서 조금씩 떨고 있는 히노테를 보며 선생님이 혀를 찼다.

“ 오늘은 너희 모두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니… 벌은 건너뛰기로 하자. 내일부터 수업 이후에 반에 모여 있어. ”

평소에 덜렁대는 성격의 선생님이 진지하게 꾸중을 하시자, 아이들은 어느 정도 죄책감을 느꼈다.



선생님은 파우치를 뒤적거리시다가 손수건을 꺼내서 히노테에게 건넸다. 히노테는 손수건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은 후, 빗물로 젖은 얼굴을 닦았다.

“ 그래도 히노테는 많이 안 젖었네… 너희가 외투로 잘 감싸서 온 덕에. 다행이다… ”

선생님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묻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반에서는 사토시와 타츠야가 비에 홀딱 젖은 채로 온 친구들을 반겼다. 아직도 사토시와 화해를 하지 못한 마사키는 사토시의 모습에 자리를 떠났고, 레이는 그의 반으로 돌아갔다. 히노테는 마사키의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친구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마사키는 아무렇지도 않게 앞머리를 손으로 말리고 있었다.

“ 히노테가 그래도 그나마 뽀송뽀송하네. ”

타츠야가 히노테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했다. 류토가 자랑스럽게 답했고, 유우마는 옆에서 말을 붙였다.

“ 우리가 외투랑 담요로 가리고 왔으니까 그렇지! 야아, 비 진짜 세더라. 그래도 잘 감싸고 왔으니까 감기는 안 걸리겠지? ”

“ 무엇보다… 시카 누나한테 담요가 있어서 다행이지. ”



히노테는 눅눅한 하늘빛 담요를 손에 쥐고 있었다. 급한 대로 세정대에서 담요를 꽉 짜서 어느 정도의 물기는 뺐지만, 집에 가서 다시 한번 빨아야 할 것 같다.

“ 그러게. 집에서 한 번 빨고 돌려 드려야지. ”

그가 말을 하며 담요를 깔끔하게 접어 두었다.



“ 몸은 괜찮아? 감기 걸리면 어떡해? ”

타츠야의 질문에 히노테는 짧게 답했다.

“ 감기…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아. 요즘 몸이 영 안 좋아서. 뭐, 병원 실려가는 거지. ”

히노테가 킥킥거렸고, 타츠야는 전혀 재미없다는 듯 팔짱을 낀 채로 눈썹 하나를 올렸다. 다른 아이들도 그런 히노테를 쳐다보기만 했다.

“ 뭐야, 분위기 왜 이래? 됐어, 아프면 아픈 거고.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오늘 재미있었어! ”

류토가 마지막 문장에 헤헤 웃었다. 류토의 웃음소리에 다른 아이들의 표정도 점점 풀어졌고, 진지한 표정 대신 부드러운 미소가 그들의 입꼬리를 올렸다.



“ 아프지 마, 히노테. “

“ 안 아플 건데? 나 놀아야 한단 말이야. ”

유우마의 걱정에 히노테가 투덜거렸다.



“ 그래도 몸 조심하고. 방금 요즘 몸 안 좋다고 했잖아. ”

타츠야가 꾸중이 섞인 조언을 했고, 히노테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 운동도 힘들고, 밖에 오래 있기도 힘들고… 불편하겠네. 난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은데! ”



류토가 순수하게 말을 꺼냈다. 히노테는 잠시 눈을 찌푸렸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유우마는 류토의 말에 담긴 미묘한 무례함을 눈치챘다. 아마도 유히야에서 히노테가 싫어하는 말들을 따로 배워둔 덕분일 것이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아이들은 여전히 류토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토시의 시선이 살짝 굳어진 것을 빼고는. 사토시는 눈치챈 것일까? 류토의 말이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유우마는 시선을 돌려 손으로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있는 마사키를 바라보았다. 문득 유히야에서 마사키가 히노테에게 괜찮냐고 물었을 때, 히노테가 아무렇지도 않게 " 괜찮아 " 라고 답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정말로 괜찮아서였을까? 아니면 그냥 익숙해진 걸까? 익숙해진 건 맞을까?

아니, 단순히 익숙해진 것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유히야에서 히노테는 유우마에게 몸이 좋지 않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지금도, 다른 아이들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익숙해져서 ‘ 괜찮아 ’ 라고 답한 거라면 왜 유우마와 다른 아이들에게는 솔직히, 몸이 안 좋다고 답한 것일까?

유우마는 순간 히노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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