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바다
하얗게 언 갯벌을 걷다 보면
가까운 것은 다 물속에 있었네
눈앞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은 다만
미명이 젖는 장면을 채 넘지 못한 눈빛
빈터가 된 오목가슴 끝으로 파고들어
귓전에 흘리는 한줄기 가쁜 호흡 사이
조금씩 물길 내주다 다시 흥건하게 접혀
돌아서는 발걸음이 있었네
겨울은 지금 부재중, 무슨 꿈을 꾸고 있나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선에서
넘을까 말까 갈까 말까 소리 놓지 못해
햇살이 구름 뚫고 나오면 돌아보다
낯선 손 잡고 한발 한발 떼다 스르르 녹는
잔설로 한 움큼의 독백으로 주저앉았겠지
체념의 바다를 걸어갔겠지
몸짓은 이미 바스러진 잔해만 남은 겨울,
그 겨울이 읽던 책갈피를 넘기고
지판에 달라붙던 비브라토의 신열도 넘기고
길고 치열했던 시간도 바다로 넘기고
헐떡이던 심장 소리가 고요해졌을 때
그때서야 바람이 멈춘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바다에서 걸어 나온 나를 무작정
숲으로 데려가고 싶었네
물컹이는 G 선이 긴 손가락 펴고 있네
이제 겨울 지난 것은 다 땅 위에 있다고
바다를 풀어 주고 있네
햇빛을 팽팽히 당기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