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달력이었다 시간을 넘기니 바람이 새어 나왔다 들숨을 잊고 있던 길이 갈래갈래 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기억이 각인된 날짜가 반짝이자 흘림체로 새겨지는 판형. 물결이 그 위로 찰랑거렸다
빛이라고는 없던 새벽이 있었다 까맣게 타들어 가는 숨골, 덤불로 뒤덮인 밤은 굶주린 짐승처럼 위태로웠지만 찢겨진 상처 위에 심장 소리를 들려주며 안부를 물었다 어둠은 젖지 않는 장대비를 몰고 다녔다
등불을 걸고 오래 기다렸다 견고한 쓸쓸함이 태양을 향해 시계를 힘껏 돌리면 서툰 몸짓이 간간이 응축된 기쁨으로 흘렀다 한순간이었지만 한생을 다 들여다 본 거울의 뒷면이다
허공에서만 피는 꽃이 있었다 여윈 언어가 파도처럼 철썩이며 마주 보고 울먹였다 왜 슬픔은 통속소설처럼 눈을 떠야 할까 바닷물을 삼킨 듯 비릿한 갈증에 미래를 조리개로 맞췄다
고통 속에 피는 연민은 탐욕을 건너온 신파가 아니었으므로
밀랍은 버리지 않아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