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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P 과학자, 홍성랩노트입니다. (4)

T 편. Transcriptional regulation, 전사조절.

by honggsungg labnote Jan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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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네가 연구하는 생명현상이 뭔데?

생명과학 연구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지난 3 편의 글을 읽고 의문점이 남아있을 것이다. 연구분야만 주구장창 얘기하고, 무슨 생명현상을 연구하는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영업직이라면서 어떤 물건을 판매하는지 얘기하지 않은 셈이고, 음식장사를 하면서 음식 메뉴는 얘기하지 않은 셈이다. 어떤 생명현상을 연구하는지를 연구실 외부에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자칫하다가는 연구 기밀을 누설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브런치에 작성하는 수준은 일반생물학이나 세포생물학 교과서를 쉬운 언어로 풀어내는 정도이기 때문에 절대로 내 연구를 알아내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다른 편들에 비해서는 간략하게 내 연구 주제를 공개하려 한다. 




나는 Transcriptional regulation, 전사조절에 대해서 연구한다.

"전사조절"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명체의 중심 원리"(Central dogma)를 이해해야 하고, "전사"와 "번역"을 이해해야 한다.


지난 모든 글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몸은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이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포핵 내부의 DNA 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DNA는 너무 커서 세포핵 밖으로 나갈 수 없고, DNA를 자칫 잘못 옮겼다가는 원본 DNA 정보에 오류가 나타날 수도 있다. 따라서 DNA의 정보를 RNA로 복사해서 세포핵 밖으로 옮기고, 세포핵 외부에서 RNA의 정보로 단백질을 만든다.


사전상 정의로 전사는 "글이나 그림 따위를 옮기어 베낌."을 의미한다. 번역은 "어떤 언어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김."을 의미한다. 즉, DNA의 정보를 RNA로 옮겨서 베끼는 과정이 전사이며, RNA라는 언어를 단백질이라는 언어로 옮기는 과정이 번역이다. 그리고 DNA에서 RNA로, RNA에서 단백질로 생명체의 정보가 이동하는 과정이 생명체의 중심원리이다.


학습 zum




Campbell biology


전사를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세포 내의 전사는 복잡한 메커니즘과 세밀한 조절을 통해서 일어난다. 어떤 유전자를, 어떤 시점에, 얼마큼 많이, 어느 위치로, 등등등 컨트롤해야 할 요소들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어떤 유전자"를 전사할지 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근육 세포는 근육 성장에 필수적인 단백질 유전자, 마이오신을 만들어야 하고, 면역 세포는 외부 침입에 대항하는 단백질 유전자, 안티바디를 만들어야 한다. 근육 세포가 외부 침입에 대항하는 안티바디를 만들면 안 되고, 면역 세포가 근육 성장에 필수적인 마이오신을 만들면 안 된다. 외부 항원은 호흡기나 혈관을 통해서 온몸에 퍼진다. 따라서 혈관에 있는 면역 세포가 안티바디를 만들어서, 혈액에 안티바디를 살포하여 외부 항원을 무력화한다. 근육 세포에서 만들어지는 안티바디는 혈관에 있는 외부 항원까지 닿기가 너무 어렵고, 근육 세포 입장에서도 안티바디는 쓸데없이 만든 단백질이 된다. 즉, 각 세포는 각 세포에게 알맞은 유전자를 전사하고 번역해야 한다.


유전자를 전사하기 위해서는 RNA중합효소, 보편전사인자, 특수전사인자, 매개자단백질이라는 부품이 필요하다. 1) RNA 중합효소. 말 그대로 DNA에 상보적인 RNA를 중합하는 역할을 한다. 전사에서 가장 중요한 연필 같은 단백질이다. 2) 보편전사인자. RNA 중합효소는 RNA를 중합하기만 하지, 보편전사인자의 도움이 없으면 어느 부분을 전사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보편전사인자는 RNA 중합효소라는 연필을 적절한 노트 위에 올려두고, 연필 잡는 자세를 올바로 맞추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3) 특수전사인자. RNA 중합효소와 보편전사인자는 모든 유전자의 전사를 위해서 필요한 단백질인 반면, 특수전사인자는 각기 다른 유전자를 전사를 하기 위해 특수하게 필요한 단백질이다. 특수전사인자는 쓰고자 하는 문장마다 다르게 끼워진 책갈피 같은 역할이다. 4) 매개자단백질. 매개자단백질은 특수전사인자와 RNA 중합효소 사이의 신호를 매개하는 단백질이다. 즉, 책갈피와 연필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이다. 


보편전사인자는 그 유전자의 전사를 시작하는 DNA, 프로모터에 결합한다. 특수전사인자는 그 유전자의 전사를 조절하는 DNA, 인핸서에 결합한다. DNA에서 이상하고 웃긴 점 중 하나는, 전사를 시작하는 DNA와 전사를 조절하는 DNA는 DNA 상에서 굉장히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전사를 시작하는 DNA와 전사를 조절하는 DNA 사이에 또 다른 유전자가 존재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어떤 유전자'를 전사할지 조절하는 특수전사인자가 실제로 전사를 수행하는 보편전사인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세포는 어떻게 그 먼 거리를 극복하고 특수전사인자와 보편전사인자 사이의 신호를 전달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연구가 바로, 유전자의 전사조절, 전사특이성에 관련한 연구이다.


세포는 어떻게 그 먼 거리를 극복하고 특수전사인자와 보편전사인자 사이의 신호를 전달하는가?



유전자 전사조절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RNA중합효소, 보편전사인자, 특수전사인자, 매개자단백질이라는 부품을 공부해 보니까, 특수전사인자와 매개자단백질에 유독 Intrinsically disordered protein (IDP, 비정형 단백질) 이 다수 분포했다. (이 문장은 2019 Hong et al., Molecules and cells을 포함한 다수의 리뷰논문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므로 딱히 연구 기밀은 아니다.) 다수의 비정형단백질은 유전자 전사 특이성, 전사 발현량, 단백질-단백질 미세 상호작용, 전사 개시 신호 전달, 등등 전사의 모든 과정에 관여한다. 우리 연구실은 비정형 단백질의 특성으로 유전자 전사조절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우리 연구실은 그 IDP의 특성을 Structural biology (구조생물학)과 Physical chemisty (물리화학)이라는 학문적 배경으로 연구한다.

 



덧. 짧은 MBTI 이야기 - T

연구를 하는데에 있어, 내향성(I)과 외향성(E)은 적절한 비율로 필요하다. 감각(N)과 직관(S)도 적절한 비율로 필요하다. 계획성(J)과 즉흥성(P)은 연구의 각기 다른 시점에 필요하다. 하지만 연구에 있어서는 논리만 필요할 뿐 감정은 하나도 필요가 없다. 연구를 할 때에 감정적으로 사람들을 쓰레기처럼 대하라는 말이 아니라, 저 사람이 마음 다칠까 두려워서, 제대로 피드백을 주지 못하고 공감만 하는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 틀린 사고는 틀렸다고, 올바른 논리 전개는 맞다고 말을 해주어야 한다. 상대에게서 좋거나 나쁜 발언을 들었다고 그 발언을 호감이나 비호감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논리적으로 옳았는지 틀렸는지에 대한 발언으로만 단순하게 받아들여야 본인의 연구 실력이 증가할 수 있다. 연구실에서 과학적인 질문을 해결하는 데에도 하루종일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데, 구성원들 사이의 분쟁으로 시간과 마음을 소모하게 둘 수는 없다. 바쁜 꿀벌은 감상에 빠져 슬퍼할 겨를이 없다. 일 해라 일.





Intrinsically disordered protein, 비정형단백질

Structural biology, 구조생물학

Transcriptional regulation, 전사조절

Physical chemisty, 물리화학


4가지 분야를 넘나들며 연구하는 ISTP 과학자, 홍성랩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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