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덕후 생활

티니핑에 빠지다

by 꿈꾸는 감자
doll-figures-3015495_1280.jpg

딱 12년 전의 일이다. 첫째 아이와 서점에 갔었다. 아이에게 아무 책이나 한 권을 사 줄 테니 골라보라고 했다. 나는 마음속에 동화책을 염두에 두었다. 아이가 4살이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동화책이 있는 곳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아이는 다른 곳으로 가서 쿠키런 미로 찾기라는 책을 사겠다는 것이다.

‘아니, 왜 하필 이 책인가?’라고 생각했다.

좋은 내용의 책과 유명한 작가들의 따끈한 신작들도 많이 있었다. 쿠키런이라는 게임도 해본 적도 없고 만화책을 본 적도 없는데, 무엇이 아이를 끌리게 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사달라고 요구했다.

다른 곳으로 자꾸 유도하고 설득을 해보았지만 아이는 이 책을 사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만화책 같은 종류는 안된다고, 동화책만 된다고 약속이라도 하고 서점에 왔어야 했나 싶었다. 미로 찾기도 아이가 어려서 아직 맞추기 힘들 것 같았다. 비닐로 싸여 있어서 안을 둘러볼 수도 없었다. 아이는 아무 책이나 고를 수 있다고 엄마가 말했다며, 결국은 아이에게 설득을 당해 책을 사주었다.

크면 언젠가는 보겠지 싶었다. 그런데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뜯어서 재미있게 보았다. 미로도 찾고, 숨은 그림도 찾았다. 물론 제대로 맞추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보았다. 나는 쿠키런이라는 게임을 몰랐고 책을 통해 다양한 쿠키들을 알게 되었다. 그림 밑에 이름이 써 있었다.

용감한 쿠키, 근육 쿠키, 딸기 쿠기, 마법사 쿠키, 천사 쿠키 등등

정말 많은 쿠기들이 있었다. 그 쿠키들의 이름을 계속 읽어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림이 이름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아이는 쿠키들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 글씨를 외웠다기보다는 그림을 외운 것 같았다. 비슷한 책 5권을 더 사주었고, 다양한 쿠키들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첫째 아이는 4살 겨울 때쯤 그림이 없어도 쿠리런들의 이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다른 동화책도 많이 읽어주고 접하였다. 하지만 아이의 흥미도를 높여준 것은 당연 쿠키런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만화캐릭터에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띠동갑 찌깐이는 티니핑에 빠졌다. 작년 5월쯤 아이의 이모가 중고 티니핑을 물려준 것이다. 이제 티니핑과 놀 나이를 넘긴 조카의 것이었다. 찌깐이는 만화도 보지 않았지만 무척 좋아했다. 피규어들은 귀여웠고, 완구에서는 소리도 났다. 귀여운 인형들도 아주 잘 가지고 놀았다.

나는 첫째 아이의 경우를 떠올리며 어쩌면 '슬기로운 덕후 생활을 하며 한글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만화를 보여줬다. 아이는 그때부터 더욱 티니핑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이랑 같이 보다 보니 나와 남편까지도 즐기게 되었다. 티니핑 노래를 외워서 따라 부르고 도서관에서 티니핑만화책을 빌려와서 읽기도 했다. 생일이나 기념일과 보상이 필요할 때면 티니핑 피규어를 선물로 받았다. 또 퍼즐, 스티커, 색칠북, 치약, 칫솔, 양말 등 티니핑 캐릭터가 그려진 것으로 샀다. 나는 뒤늦게 티니핑에 빠지면 살림을 못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닫게 되었다.


언제부터였던가!

찌깐이는 티니핑 피규어로 상황극을 하지 않으면 하루의 놀이가 끝나지 않았다.

다른 놀이로 쉬지 않고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티니핑 놀이를 하지 않고 잠자리에 누우면 울면서 잠들곤 했다.

첫째보다 더 자기주장이 강한 찌깐이와 만화를 보는 시간을 조정하는 것도 큰 일이었다.

‘아, 티니핑!!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는가?’


나는 고민 끝에 동화를 끌고 와서 티니핑 상황극에 붙였다. 예를 들면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오로라핑과 왕자핑이 대신 상황극을 하는 것이다. 찌깐이는 언제부터인가 일곱 마리 아기염소, 피노키오, 빨간 머리, 아기돼지삼형제 등 명작동화들의 스토리를 다 꾀고 있다.

기승전결 내용을 섞어서 물어보거나, 등장인물의 순서를 바꿔본다거나, 두 동화를 섞어 본다거나 해서 물어보면 엄마가 바꾼 부분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처음에는 아이의 기억력이 신기하고 대견했다. 문제는 내가 점점 동화의 대용들이 섞이고, 한두 달이 지나면 내용 중간중간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피노키오에서 “고래가 피노키오를 삼켜버렸어”라고 상황극을 하면,

찌깐이는 “아니야, 고래가 아니고 상어잖아”라고 정정해 준다.

정정이 아니라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낸다.

아기돼지 삼 형제에서 “똑똑!! 엄마란다.”라고 말하면,“그건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지. “

나는 동화가 찌깐이 머릿속에 많이 들어 갈수록 힘들어졌다.

스토리를 다 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상황극을 하면서 틀린다고 맨날 혼이 난다. 44월이 된 울 찌깐이는 어떻게 외우는지 정말 신기하다.

첫째처럼 4살에 한글을 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스토리는 정확하게 외우고 있다.

추측하건대, 만화를 보고 상황극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만화를 외우는 일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싶다. 내용도 너무 재미있지만 집에 있는 피규어로 놀아야 하기 때문에 외우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티니핑을 시작한걸 잠깐 후회한 적도 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덕후 생활을 지지해 주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슬기로운 덕후 생활의 장점 ( 꿈꾸는 감자엄마의 생각 )

1. 아이가 선택한 취미를 응원하면 존중받는 느낌을 아이가 느낄 수 있다.


2. 아이들이 보는 만화이기 때문에 따라 부르는 노래가 희망적이고 밝고 신나는 귀여운 리듬과 내용이기 때문에 외워서 부르면 감정표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널 위해 난 노랠 부를게

저 별들도 나를 따~라와

우리 모두 행복해지는 마법 루루루 루 ~

- 루루핑송 가사 중 -


3. 티니핑의 캐릭터로 아이의 놀이가 풍부해진다.


4. 퍼즐, 색칠공부, 미로 찾기 등으로 티니핑캐릭터가 들어가 있는 확장활동이 아이의 뇌발달에 도움을 준다.


5. 만화와 상황극을 통해 언어확장이 된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티니핑에 빠질수록 새로 나온 캐릭터를 사고 싶어 하며, 만화를 보고 싶어 하는 시간도 길게 보길 원한다. 조절하는 것이 찌간이와 나의 숙제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6화엄마,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