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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ssy Oct 06. 2024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소크라테스, 그리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생 때만 하더라도 꼰대라는 단어는 참 멀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꼰대를 만날 일도 없었고, 꼰대라고 해봤자 주변 선배들에 불과했다.

 술을 마실 때 빼지 말고 빨리빨리 마시라고 권하는 젊은 꼰대들.

 

 직장에 가고 나서야 내 주변 젊은 꼰대들이 어떻게 진. 짜. 꼰대로 변하게 되는지 알게 되었다.

상사 중에 나르시시즘이 심한 사람이 있었다.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 외의 다른 사람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규칙에 다른 사람들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요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했다. 인사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괴로움을 토로하는 어린 신입 직원을 외면했다. 직원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는 원칙을 들어대며 부당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 상사를 볼 때마다 나는 어떤 생각을 했냐면,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를 반면교사 삼아서 올바른 어른이 되려 했다.

근데 그게 참, 맘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끔 대학 후배들에게 조언하는 나를 볼 때마다 그 상사의 모습이 나에게 겹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은 너무 힘드니까 다른 일을 찾아봐.”

 “너를 위해서 하는 말들이야.”

 너를 위한다는 말을 하면서 나는 너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계속해서 나의 이야기만 했다.

 나는 힘들다고, 나는 이 일이 너무 싫다고, 도망치고 싶다고.

 이 일을 꿈꾸면서 노력하는 너를 보면서 나는 너를 응원하기는커녕 내 불만만 토로했다.

 어쩌면 후배와 연락이 끊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상사와 같이 자신의 노력만 이야기하고, 자신의 고충만을 이야기했으니까. 이야기 속에서는 ‘나’만 있었지, ‘우리’는 없었다. 나도 꼰대가 되어가고 있구나. 너를 위한 조언이라는 핑계로 나의 이야기만 강요하는.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책(책 이름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중에 찾으면 꼭 참고문헌으로 넣겠다)에서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기는 많은 소피스트들이 활동했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타인들을 설득하는 힘이 중요했다. 내가 똑똑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뽐내는 것이 중요한 시대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런 명언을 남긴다.


“너 자신을 알라. “


지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자기 인식이라는 말이 모호하게 느껴진다. 유명한 말이지만,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명언을 보자.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 명언을 보면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자기 인식의 시작은 자신이 ‘무지함’을 깨닫는 데에서 온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지혜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그 똑똑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에서, 모두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틈에서 소크라테스는 무지함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시대와 역행하는 소크라테스의 태도는 결국 사람들에게 “나는 정말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고 더 깊은 성찰을 끌어내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모른다’라는 감각을 가지지 못한 꼰대들의 최후는 어떨지 궁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도 관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지금껏 고수한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참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의심하는 태도는 언제나 필요하다. 이 태도를 갖게 해 준 책이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19세기말 유명한 생물학자이자 어류학자인데 물고기를 분류하고 기록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그는 학자로서 명성을 얻은 후에 책을 한 권 쓰게 된다. 그 책은 인류의 쇠퇴를 예방하기 위해 “백치”들을 몰살하는 필요성을 주장하는 책이었다. 이 책과 그의 우생학 관련 활동으로 인해 “백치”로 분류된 많은 사람들이 삶이 망가지는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이후 우생학 관련 활동으로 인해 맹렬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또한 그는 물고기를 분류하는 일을 평생 동안 해왔지만 “어류”라는 범주는 생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자신의 주장만을 강요하고, 그 주장에 따라 물고기와 사람을 분류하던 그의 삶은 결국 ‘헛된 삶’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이 하늘의 별을 올려다면서 움직이고. 있는 게 별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그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에 관해 생각하고, 별들이 매일 밤 그들 머리 위에서 빙빙 돌고 있는 천구의 천장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놓아버릴 수 있도록 수고스럽게 복잡한 사고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별들을 포기하면 우주를 얻게 되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된 사고를 포기하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우주. 즉, 드넓은 지혜였다.

책을 읽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얻게 된 나는 젊은 꼰대에서 탈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계속 책을 읽었고, 나는 ‘모른다’라는 자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모른다’라고 생각하니 타인의 말을 더 주의 깊게 들을 수 있게 되고, 타인의 삶을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낯설고 피곤했지만 이제는 그 사람의 삶을 듣는 게 아주 흥미로운 책을 읽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재미있었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 사람의 장점이 먼저 보였다.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나의 첫 직장 생활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직장 선배님에 대한 이야기다.

선배님은 나의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였는데 우리는 소수 부서에 속해서 선배님과 일 년의 시간 동안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유대감을 쌓을 수 있었다.

선배님은 나에게 조언을 하시면서도 월권이 아닐까 고민하셨고,

나에게 조언을 구하실 때도 있으셨다.

선배님은 ‘나는 모른다’라는 자기 인식을 넘어서서 타인으로부터 지혜를 구하려는 태도까지 갖추고 계신 것 같았다.


그런 태도는 나로 하여금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구나.

지치는 직장 생활 속에서도 외롭지 않았다.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으니까.


어느 날 그 선배님의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책장 한 구석에 내가 추천해 드린 책이 있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선배님은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을 떠나서 자주 만나 뵙지는 못하지만,

선배님의 말이, 나의 말을 들어주시던 그 따뜻한 눈빛이, 책장에 꽂혀있는 그 책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참고문헌

밀러, L. (2021).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숨겨진 생명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정지인, 역). 곰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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