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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남 Nov 29. 2024

콩으로 메주 쑤는 이야기 / 한수남


통통한 햇콩을 칼칼히 씻어 불린 다음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 넉넉히 때노라면 솥에 들어앉은 콩콩콩

서서히 벽을 허문다


불을 지키고 앉은 사람의 얼굴 벌겋게 익어가면

맘속에서 오래된 풀리지 않던 매듭도

옷고름을 풀기 시작하고

부르르, 끓어 넘치기 직전

찬물 한 바가지 골고루 뿌려 주어야 한다


뭉근히 뜸을 들여 잘 삶아낸 콩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누렁 콩

한 바가지씩 퍼내어 쿵쿵 찧을 때면

사람 마음속의 응어리도 시원히 뭉개고 으깨어

쿵쿵, 쿵쿵따, 신나게 찧어 내어


고놈을 목침같이 반듯하게

자식새끼같이 예쁘장하게

네 귀를 다독다독 매만져 주면

아흐 사람의 몸도 구수하고 맛깔나게

다시 태어나는 듯


누가 메주더러 박색이라는가

이렇게 점잖고 잘생긴 놈들 짚으로 각시를 지어

바람 잘 드는 그늘에서 두어 달 말릴 테니

지나다 보시거든


발효와 숙성을 거듭하는 창조적 정신

그 향긋한 냄새나 한번 깊숙히 맡아보시라.



메줏덩이를 매달 때 짚으로 싼 것을 메주각시라 한다.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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