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한 그릇 / 한수남

by 한수남


잘 끊어지는 면발이 착하구나

호로록 넘어가는 소리가 예쁘구나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한 해 막바지

허름한 국숫집 안에서 마주한

희고 순결한 국수 한 그릇


세상은 가도 가도 질긴 심줄이더라.


지쳐버린 컴컴한 입속으로

가늘가늘한 너의 몸이 미끄러져 들어오면

뜨뜻하고 알맞게 배가 불러와서

마지막 국물 한 모금까지 깨끗이 넘기고서,


새해는 이처럼

순백하게 시작하고 싶은 것인데


바싹 마른 면발이 통통 살아나며 떠오르듯

다시 한번 촉촉하게

물기 오르고 싶은 것인데.




2024.12.29. 항공기 사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ㅠㅠ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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