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통을 푹 잠기게 할 수 있는
우물이나 욕조나 바다
그런 게 있었으면 한다. 찰방찰방
가득찬 물 속에 들어앉아 세상 시름을 잊고
머리통뿐 아니라 열손톱 열발톱을 다 담그고
내가 누구인지 제발 잊었으면 한다.
영수증, 공과금, 통장잔고 따위를 저만치 밀쳐두고
무한반복되는 다섯시 일곱시 아홉시뉴스를 꺼버리고
나는 다만 깊숙히 가라앉고 싶다.
책이나 바느질, 그 어떤 것도 좋다.
손가락 발가락이 쭈글쭈글해지고
머리통이 좀 말랑해지면 둥근 머리통에 붙어있는
머리칼을 정성껏 말리고 나서
새롭게 눈을 번쩍 떴으면 한다.
한 마리 인어(人魚)가 된 듯이
꼬리를 한번 탕! 튕겨 보았으면 한다.
사진(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