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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남 Dec 18. 2024

몰두(沒頭) / 한수남


머리통을 푹 잠기게 할 수 있는

우물이나 욕조나 바다

그런 게 있었으면 한다. 찰방찰방


가득찬 물 속에 들어앉아 세상 시름을 잊고

머리통뿐 아니라 열손톱 열발톱을 다 담그고

내가 누구인지 제발 잊었으면 한다. 


영수증, 공과금, 통장잔고 따위를 저만치 밀쳐두고

무한반복되는 다섯시 일곱시 아홉시뉴스를 꺼버리고 

나는 다만 깊숙히 가라앉고 싶다.

책이나 바느질, 그 어떤 것도 좋다.


손가락 발가락이 쭈글쭈글해지고

머리통이 좀 말랑해지면 둥근 머리통에 붙어있는

머리칼을 정성껏 말리고 나서


새롭게 눈을 번쩍 떴으면 한다. 

한 마리 인어(人魚)가 된 듯이 

꼬리를 한번 탕! 튕겨 보았으면 한다. 



사진(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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