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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식물스러운 여름나기 / 한수남

by 한수남

옥수수를 둑둑 분질러 겉옷을 조금 벗기고

가지런한 몸통을 먼저 알뜰히 먹고

그녀의 노란 머리칼을 삶아 그 물을 마셨다.


초록오이 우둘투둘한 껍질을 시원스레 깎고

매끈한 연두빛 속살을 아사삭

베어 물었다.


가지는 보랏빛을 살리면서 찜기에 쪄내고

세로로 쭉쭉 찢어서

몰캉몰캉 양념해서 부드럽게 먹었다.


먹고 먹어도 뜨거운 여름이었지만

이 아름다운 식재료들 덕분에 그럭저럭 행복하였다


가끔 고기나 생선을 구해

깻잎 위에 상추 위에 호박잎 속에 넣었더니

어느새 성큼 가을이었다.


살아내느라 다들 애썼다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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