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 한수남

by 한수남


처음에는 캄캄한 절망 같았지.

누가 뒤에서 훅, 밀면 그대로 고꾸라져 들어가

못나오는 구덩이, 캄캄한 흙구덩이


단풍나무 묘목을 심으려고 구덩이를 파보니 알겠네

땅 속이 얼마나 촉촉한지, 얼마나 신선한지,


바싹 마른 땅 표면에 비해 훨씬 찰져보였지.

벌레들도 꼬물거리고

검은 윤기가 도는 구덩이의 세계


그 속으로 어린 단풍나무 한그루 밀어넣고

새식구를 싫어하지 않도록 다독다독 두드려주었지.


그래서 난, 살다가 절망이 보이면

우선 구덩이를 팔 거야. 컴컴한 땅 속으로

희망 하나를 넣어놓고 까맣게 잊어버릴 거야.


구덩이는 빗물을 빨아먹고, 어린 나무는 새 잎을

틔우겠지. 그렇게 한참 지나면

몇 해만 지나면 훌쩍 자라있을 거야.


절망은 새파란 희망이 되어

구덩이 위에서 팔랑팔랑 나부낄 거야.


구덩이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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