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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지니
Oct 05. 2024
그의 유일한 남자 동지
아빠...
동생이 장애인 시설로 떠난 후로 우리 집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이상한 고요함을 느꼈다.
동생에게 고함치는 아빠나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일도 없었고,
동생을 데려가라는 경찰서에서의 전화도 더 이상 없었다.
모든 것이 적응되지 않는 이상한 낯선 고요함이었다.
그러나 이 고요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동생이 간지 몇 달이 되지 않아 시설 측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느라 나름 날카로워져 있는 상태에서
새벽에 엄마와 아빠가 함께 나가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후에 들을 이야기로는 동생이 폭행을 당해 장 파열이 진행되어,
장을 절제하는 응급 수술을 해야 해서
보호자를 급히 찾은 것이었다.
가해자가 누구인지는 그 당시 부모님으로써는 밝히 기기 너무나 힘든 입장이었었다.
일단 동생을 수술을 했고, 장이 짧아져서
배
쪽으로 장루(일명 똥주머니)를 달고 집으로 다시 오게 되었다.
적어도 일 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
장이 어느 정도 길어진 다음
다시 장을 제자리로
넣는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동생은 장루주머니를 배옆에 달고
집으로 일단 다시 오게 되었다.
시설 측에서는 연신 사과를 했지만, 그렇다고 동생이 장루를 달기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는 일이었다.
시설에서는 장루를 달고 있는 동생을 돌봐줄 만한 여력이 없기도 했고, 엄마가 폭행당해 그렇게 된 동생을
다시 시설에 바로 다시 입소 시키는 것을 반대하셨다.
어떻게 서든 견뎌 보시겠다고 하셨다.
간단하게 적었지만, 동생은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1달 넘게 입원하고, 병원을 3달가량 있다가
근근이 몸만 추스르고 집으로 퇴원을 한 것이었다.
처음 병원에서는 수술 경과가 좋지 않다고 동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하였다.
퇴원 후 동생의 몸은 뼈만 남아 있었다.
장루 탓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먹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장루로 배설물이 나왔다.
음식을 자주 조금씩 먹어줘야 되는데,
동생에게 그렇게 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엄마뿐이었다.
몇 달 동안 집에서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가며 장루를 갈고 상처 치료를 해주고 병원을 데리고 다녔다.
장루를 단곳은 언제나 발갛게 헐어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본인이 처리를 하고, 속독을 하겠지만
동생은 장루라는 것 자체를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장루팩같은
곳으
로 똥이 나오면 마구 웃었다.
동생은 몸이 조금 나아지자, 또다시 시설에 가기 전처럼 장루까지 단채로 밖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장루를 재때 갈지않으면.배설물이 역류를 해서
동생을 더욱더 필사적으로 찿아다녔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라고는 장루를 달고 다니는 더 나쁜 상황이라는 것.
수술 후 1년 쯔음이 지났을 때, 도저히 장루를 달고 다니는 동생을 감당할 수 없어서,
장이 충분히 자라지 않았지만, 다시 장을 제자리로 넣는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쯤 엄마는 일을 하셔야 했고, 아빠가 동생 병시중을 들었다.
동생은 수술 후 다시 시설로 가게 되었다.
우리는 동생을 시설로 다시 보내고 싶지 않았고, 동생도 가길 원치 않았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있으면, 동생을 하루종일 따라다니면서 봐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동생의 나쁜 여러 가지 버릇들 또한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었다.
동생이 수술하고 시설로 다시간 그해였다.
아빠도 난생처음 다른 사람의 공장에 일을 나가시기 시작한 세 번째 되는 달이였다.
아빠가 누워있었고, (아빠는 내가 어릴 때 집에서는 항상 자주 누워 계셨다)
엄마가 아빠 왼쪽 배언저리에 무언가 만져진다고 하셨다.
다음날 친척분이 하시는 병원으로 가셨다.
그리고는 큰 병원을 소개해 주셨다.
아빠는 무언가 만져진다는 그날로부터 15일 후에 간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리고 5개월 후에 돌아가셨다.
나는 대학교에서 중간고사 첫날 아빠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갔다.
1998년이었다. 나는 그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IMF가 터진 다음 해였고, 뉴스에서는 연신 좋지 않은 소식만 나왔었다.
우리 집은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장례식장에 동생을 데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동생의 유일한 남자 동지인 아빠는 암선고 후 5개월만 더 사시고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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