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으로 뭘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자꾸 돈 생각을 하다 보니 아무것도 안 하게 됐다. 그냥 계속 생각만 했다.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현실적으로는 돈이 필요했기에 다시 세무사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비타민 포장 아르바이트, 마스크 포장 아르바이트, 공공 근로를 했다. 생각만 하는 걸 벗어나고자 몸을 쓰는 일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늪의 길로 들어갔다.
공공 근로는 8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하는 거였고, 음식물 처리장 옆 공원에 배치받았다. 여름이라 땀이 많이 났는데 쓰레기를 온몸에 덮어쓴 느낌이었다. 한여름 내내 적응 안 되는 불쾌한 쓰레기 냄새를 맡으며 버틸 수밖에 없었다. 돈 때문에.
처음 공원에 갔을 때 중년 여성분들이 있으셨고, 젊은 남자는 이 일을 안 하겠다며 바로 자리를 떠났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난 그때 당시 정말 돈이 없었다. 다른 일을 찾아볼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시야가 좁았던 것 같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했지만 조금만 버티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첫날부터 산산이 깨졌다. 처음 한 일이 보도블록 벽돌 사이에 잡초를 제거하는 거였다. 도구도 없이 목장갑만 끼고 손으로 잡초를 10여 회 쥐어뜯었고, 뽑은 잡초는 대빗자루로 쓸어서 포댓자루에 넣었다. 땡볕에 쪼그려 앉아서 몇 시간을 그 일을 하며 속으로 울었다. 근데 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해서 그냥 일했다.
공원 전체를 돌면서 쓰레기를 주웠고, 코로나 시기라 체육 기구에 소독약을 뿌려서 걸레질했다. 가을에는 낙엽을 플라스틱 갈퀴로 쓸어서 포댓자루에 넣었다. 모자를 쓰고 토시를 해도 피부가 탔고, 쓰레기와 낙엽을 주우려고 산을 타고 풀숲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정체 모를 벌레와 벌, 개미, 모기, 진드기들이 몸에 달라붙었다. 벌레를 제일 싫어하는데 참고 일했다. 돈 때문에.
뚜렷한 목표 없이 돈 때문에 일을 하려니 더 죽을 맛이었다. 이것보다는 다른 쉬운 일을 찾았으면 됐는데 그때는 무슨 고집이었는지 스스로 힘든 일을 선택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출근할 때 오피스룩 입은 내 나이 또래 직장인을 보며 ‘난 왜 이러고 있나?’ 자괴감이 들었다.
돈 때문에 일하고 돈 때문에 산다는 것이 너무 괴롭고 슬픈 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 인생에서 진짜 밑바닥 찍었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돈 때문에 일을 했는데 정작 내가 얻은 건 돈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상처였다. 그 뒤로 코로나가 더 심해졌다. 심리적으로 약해진 난 그래서 더 움직일 수 없었고 외출을 거의 안 하고 지냈다. 실체 없는 두려움과 생각이 나를 가뒀다. 집 밖으로 나가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렀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방황은 결국 나 스스로 생각을 고쳐먹으면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