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시작하기 가장 좋은 날"
|25년 만의 방문 밖으로|
“40살에 다시 진로고민 후 약대에 가기로 결정하고 46세부터 뉴질랜드에서 약사로 10년째 근무 중이고, 이제 글을 써보려 합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늦은 나이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우리가 살아갈 날 중에 가장 젊고 예쁜 날이니까요.
가장 아름답고 젊은 오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세요. 아주 잘하고 있고, 더욱 잘할 수 있다고 토닥여 주세요. “
2024년 7월 23일 오후, 오클랜드 시내에 주차된 차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앉아있다가, 처음 sns의 스레드라는 곳에 우연히 올리게 된 위의 세 문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답글을 달아주며, 불과 두 달 만에 거의 6000명에 가까운 팔로워가 생겨나게 되었다. 내가 처음 접해보는 sns 세상, 그리고 너무 충격적이었다.
부끄러워서 또는 자신이 없어서 지난 25년간 뉴질랜드에서 반타의 반 자의에 의해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왔었던 나는, 나 외에도 이렇게나 많은 힘든 혹은 도전이 두려운 이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나의 부족한 글이 최소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드디어 현관밖으로 나오게 되었던 것 같다.
|어리다 생각했던 진짜 어릴 때|
오늘이 가장 어리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어렸었었던 스무 살이 아닌 그 후로부터 20년이나 훌쩍 지난 40살 때의 어느 날이었다.
실제로 내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었던 때는, 내 생의 첫 아르바이 트였었던 신라 호텔에서 일할 진짜 어린 나이었었던 18살 때, 그래서 그곳에서는 어디서나 막내라고 불렸었던 그때 외에는 없었다.
|19세부터 복학생 언니|
대학교를 입학한 후 여러 가지 개인 그리고 집안 사정으로 첫해에 한 학기만 다닌 후, 1년간의 휴학 후 다시 복학을 하게 되었었다.
원래 초등학교를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한 살이 어렸었던 일곱 살에 입학했었기에, 나는 다시 복학을 한것이었어도, 같은 나이의 또래들과 대학을 다닌 것이었지만, 또 나와 같이 7살에 학교를 들어온 학생들은 나를 “복학생 언니”라고 불렀었던,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더 이상 어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 후 몇십년을 살아왔던 이유가.....
|천명의 어린이와 노래하며 춤추던 행복했던 나|
대학을 다니면서, 어린이 행사에서 레크리에이션 진행을 하고 또 때로는 행사에서 사회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였었던 적이 있었다.
가장 크고 기억에 남는 행사는 거의 천명이 넘는 어린이들과 같이 노래하고 춤추던 삼성 구미공단의 어린이날 행사였었다.
그날 기뻐하며 같이 노래하며 춤추는 그 많은 아이들과 나는 정말 행복한 세 시간을 보냈다.
또한 호텔에서 진행되던 유명 디자이너 헤어쇼, 은행의 기념행사 그리고 제주도에서 진행된 신혼부부 행사 등의 사회 혹은 레크리에이션 진행자로 활동을 하던 시기의 일이다.
승무원당시 한 행사에서
방송일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받았을 24살일 당시에, 그때만 해도 오래전이라서였는지, 방송 관계자는 나의 나이를 21살로 프로필에 적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하여서, 나 자신도 나이가 방송을 시작하기에는 꽤나 많은 나이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젠 받아들인 너무 많은 나이, 아직 서른 무렵|
그로부터도 거의 9년 후, 뉴질랜드에서 홀로서기의 첫걸음으로 정부에서 보조해 주는 영어학원을 다닐 때에도, 대부분 유학생으로 와서 대학을 들어가기 전에 IELTS시험을 위해 들어온 어린 학생들에 비해, 나의 30대 초반의 나 자신은 이제 노년기에 접어들었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었다.
그 후 2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뉴질랜드에서의 첫 번째 대학을 갔을 때에도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에 비해 10살 이상 위였었던 나는 마치 고인돌 시대의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어쩌다 보니 다른 세상에서만…|
어쩌다 보니 너무 오랜 세월, 약대까지 포함하면, 20년 정도를, 나는 비슷한 나이의 또래 집단의 친구는 거의 없었고, 나보다 훨씬 어린 세대들과 공부하고 직장을 다니다 보니, 20대 중반부터 40이 넘도록, 지금 생각하여 보면, 정말 젊었을 그 시기에 늘 나는 나이가 너무 많고 무언가를 하기엔 늦었다는 부정적인 생각과, 늘 한 열 살만 어리면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너무 좋은 나이일 텐데 하는 의미 없는 후회들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의 풍차, 그 나이|
40살이 되어서, 약대를 가기로 결정한 나에게는 여러 가지 도전이 많았지만, 나 자신 그리고 나의 당시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걱정하며 또 강조하며 얘기했었던 것이 바로 "그 나이"였었다.
40살에 혹 약대를 위한 건강 과학과 (Health Science)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46세경에 약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당시에 나는 그 후 20년 이상을 가질 전문직이라면, 내가 5년 정도를 투자하더라고, 나의 시간과 노력을 쏟을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 나이"때문데, 다들 내게 진짜 ”도나키호테 (돈키호테의 여성형)“처럼 왜 이렇게 무모하냐, 너 심지어 문과를 공부했던 수포자라 해놓고, 약대 도전을 40이나 먹어서 하다 안되면, 허비해야 하는 1~2년이 젊었을 때의 몇 년과는 천지차이일것이란 우려의 말들을 해주었었다.
다들 당시에는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신경 써준 이들임을 알기에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때에 내가 만약 약대를 가지 않았었다면, 지금쯤 아직도 면세점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 사이에서 랑콤 화장품 매니저일이라도 붙들고 있을 수 있었을까!?….
|오늘이 지나면 또 하나의 젊은 날의 추억|
그러나 다들 바로 그때가 푸르르고, 찬란하도록 빛이 나고 , 젊고 아름다우며,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가장 좋은 때였다는 것은, 지나고 난 다음에나 깨닫게 되는 게 우리네 한 치 앞도 못 보는 인간이라 생각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 그때를 돌아보니, 그때의 40살의 나는 젊었었고, 그래서 내가 그때 모두 무모했다던 도나키호테의 결정은 아주 그리고 진심으로 잘한 것이었다.
그리고 10년 뒤의 나는 지금의 내가 "이 나이"에 처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을 너무도 따악 좋은 나이에 자~~ 알 시작을 했다고 칭찬을 할 것이다.
고로, 무언가를 시작하기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오늘"인 것이다.
오늘의 나의 결정은 내일의 더 나은 나를 만나게 해주는 시작버튼이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내일의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해 해야 할 준비는, 가장 어리고 젊고 아름다운 오늘의 "나"와 어떻게 하루를 잘 보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
|시작 그리고 꿈의 구체화|
"오늘이 가장 어리고 아름다운 날임을 깨닫고, 오늘 결정하고, 오늘부터 그 결정을 위한 구체적인 과정을 시작해 나가는 것“
약대를 가고 싶었던 나는, 다니던 회사에 퇴사를 위해 4주 노티스를 주었고,
약대를 위한 건강과학 (Health Science) 과정을 바로 등록하였고,
살고 있던 아파트의 주인에게 이사전 4주 노티스도 주었으며,
기숙사를 들어가야 했었기에, 살림살이를 팔거나 지인들에게 주며 정리를 제일 먼저 시작했다.
“일단 시작을 해야, 꾸던 꿈도 조금씩 구체적으로 내 앞으로 다가옵니다”
계획만 십 년 이십 년 하는 완벽주의자들이 보면, 나의 무모한 도나키호테의 도전이 현실적이지 않고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계획단계 자체에 지쳐버리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도 짧기 때문입니다.
“오늘 너무도 젊고 멋지고 아름다운 ”나 “와의
깊은 대화후, 결정했다면 우리의 그 꿈을 위해 한번
헌걸음 다가가보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