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연하천에서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길도 13km 정도로 어제와 비슷한 거리였기에, 일찍 일어나서 가야겠다 하고 저녁을 먹고 바로 잠들었다. 새벽 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나도 카티도 벌떡 일어났다.
오늘도 늦게 도착할 순 없지, 부랴부랴 짐을 싸고 밖으로 나오니 벌써 절반은 출발하고 없었다.
샘터에서 얼음장 같은 물로 고양이세수를 하고 아침은 에너지바로 때우며 세석대피소로 향했다.
어렸을 때 아빠 엄마는 우리 셋을 데리고 지리산 등반을 자주 갔는데, 그 시절 텐트, 카메라가방, 식료품, 조리도구며 침낭이며 모든 걸 지고 산을 올랐다. 그 시절에 우리가 매고 있던 가방은 책가방 수준이었고, 엄마아빠가 메고 있던 가방은 정말 컸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무거운 걸 이고 지고 어떻게 그 산을 오를 생각을 했을까 싶다. 게다가 아빠는 철제로 된 커다란 카메라 가방에 온갖 장비를 넣어서 여행 내내 우리 사진을 찍어주셨다. 비가 쏟아지고 안개가 끼어 아무것도 안보였지만, 사진 속 비옷을 입고 흐린 안개를 등지고 서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행복해보였다.
세석대피소로 가는 길에는 바위가 유독 많았는데 안개 때문에 바위가 미끄러워서 네발로 기어 다녔다.
오전이 조금 지나고, 구름 때문에 햇빛은 보지 못했지만 능선을 보며 걸을 수 있었다.
부지런히 걷다 보니 금방 오후가 되었고, 세석대피소는 점심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요리를 하게 되면 챙겨야 할 재료가 많아, 가방이 너무 무거워질 것 같아서 인스턴트식품 위주로 가져갔다. 높은 산에서 끓여 먹는 라면은 저세상 맛이었다. 그렇게 감탄하며 점심을 먹는데 옆에 앉아계시던 산악회 어르신들이 어디서 왔냐며 질문공세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한 분이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 산을 많이 안 타본 티가 너무 많이 난다고 하셨다. 웃으며 어떻게 그걸 아시냐고 하니, 가방이 어떻게 싸져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그분은 등산을 할 때는 어떻게 무게를 나눠야 하는지, 어떤 물건들을 위로 두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고 초콜릿을 한 아름 손에 쥐어주었다.
스무살이 되었을 때 나는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갔었다. 그 곳은 넓은 평지를 가로질러 마을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는 여행이였다. 나는 그 당시에 영어를 정말 한마디도 할줄 몰라서 다른사람과 의사소통이 전혀 안되었는데 독일 아주머니 한분이 나타나 내 손에 이상한 마른 열매같은 걸 쥐어주셨다. 이건 도대체 뭐지, 먹는건가? 하고 쳐다보고 있자, 주변에 있던 돌맹이로 몇번 내리치더니 호두처럼 안에 있는 열매를 꺼내주셨다. 나는 그날 태어나 처음으로 생아몬드를 먹어봤다. 손짓 발짓으로 어떤 나무가 아몬드나무인지 알려주고 그 옆에있던 포도밭에서 포도알을 한웅큼 따서 내 손에 쥐어주었다. 산신령처럼 뿅하고 나타나 음식 쥐어주는건 만국공통인가 싶었다.
장터목대피소에 가는 도중 우리는 반지의 제왕에 나올 것 같은 풍경을 마주했는데, 산등성이로는 길이 이어지고 그 길을 가로지르는 구름이 폭포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왠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기분에 옆으로 솟아있던 바위에 앉아 초콜릿을 먹으며 한참을 바라봤다. 사진을 찍으려 하면 구름이 넘어와 길이 사라지고, 보고 있으면 바람에 나타나는 길이 너무 재밌어서 카티랑 한참 Come on , please show me the way! 를 외쳤다. 산이랑 장난치며 노는 것 같아 너무 신기했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허공에 소리 지르고 있는 미친놈들 같았겠다 싶다.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니, 사방이 열려있고 주변엔 구름이 둘러싸고 있어서 꼭 하늘섬에 온 것 같았다. 능선에 서서 하늘을 마주하니 다른 세계로 가는 길에 서있는 것 같았다. 저녁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위층에서 누워서 쉬고 있는데 이번엔 산악회어머니들이 옆으로 앉아 수다를 떨기시작했다. 눈을 감고 누워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뿌앙 하는 큰 소리가 들려서 놀래서 눈을 떴더니, 산악회어머니 중 한 분이 웃다가 방귀를 뀐 것. 카티랑 동시에 눈을 마주치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분은 멋쩍게 사과를 하시고는 같이 오신 분들과 까르르 웃으셨다.
저녁이 되자 하늘은 꽤나 빨리 어둑어둑 해졌고, 카티랑 나는 어기적 어기적 나와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포함해 산장에는 대략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고 대부분 산악회에서 오거나 친구들과 모여 같이 등산을 온 것 같았다. 삼분카레를 데워먹으려고 취사장으로 가는데 멀리서 카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가보니, 친구들하고 등산을 오신 아저씨가 카티에게 한국말로 대화를 시도하고 계셨다. 알고 보니 우리가 아까 바위에 앉아서 구름에게 소리치고 있을 때 지나가며 봤다고, 우리가 너무 즐거워하는데, 뭘 보고 그렇게 소리를 치고 재밌어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다 저녁을 준비하러 가려하니 함께 먹자고 우리를 초대해 주셨다. 우리는 인스턴트음식밖에 없어서 따로 챙겨갈 게 없었는데 아저씨를 따라가니 삼겹살파티를 하고 계셨다. 막걸리에 김치 그리고 전용고기불판까지 이걸 진짜 다 들고 여기까지 왔다고? 덕분에 우리는 해발 1,670m에서 고기파티라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고, 저녁을 먹는 동안 카티와 아저씨들 얘기를 통역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등반을 하는 이틀 내내 산에 있던 많은 분들이 우리를 돌봐주신 거 같아 너무 감사했다.
우리의 계획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배낭을 두고 천왕봉에 다녀와 하산하는 거였는데, 새벽 네시에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건 괜찮았지만 번개가 치기 시작하니 밖에 나가는 것이 무서웠다.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렸다가 오전에 정상을 보고 올까도 생각해 봤지만 하산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서 포기하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에 가서 처음으로 정상을 가지 않고 내려왔는데, 아빠에게 전화로 내려간다고 하니 두고두고 카티에게 정상을 못 보여 줘서 아쉬워하셨다. 하산하는 길은 바위길이 많았는데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힘을 주다 보니 다리를 덜덜 떨면서 내려왔던 것 같다. 카티랑은 처음 간 산이였는데, 등산하는 동안 어렸을 때 가족들과 함께 보냈던 지리산에서의 좋은 추억들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카티는 할아버지 할머니랑 알프스로 등산을 많이 다녔는데, 할머니는 길을 함께 걸으며 먹을 수 있는 열매, 그 지역에서 나는 꽃들을 하나하나 알려주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바이에른 스타일의 등산바지와 등산화 세트로 맞춰 사주시고 등반하는 내내 카티와 할머니를 비디오로 담았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산에서 있었던 좋은 추억들을 나누면서 2박 3일의 등산을 마치고 광주로 돌아왔다.
이후에 우리는 매년 한 번씩은 꼭 등산을 하러 간다. 유럽에서든 한국에서든 산은 항상 좋은 추억들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좀처럼 다 같이 시간을 맞춰 여행을 가는 게 쉽지가 않은데 언젠가는 온 가족 다 같이 다시 산에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