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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숄더 Nov 11. 2024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해

괜찮아, 나는 경험이 필요해

해외여행을 올 때 가장 기대했던 건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여유를 즐기는 거였어. 치앙마이에 도착하고 한 달이 넘도록 수영을 하지 못하면서 수영에 대한 갈증이 더 심해졌지? 그리고 마침내 수영장이 있는 호텔로 왔어. 나는 하루 종일 수영장에서 놀거라 다짐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수영장에 모르는 사람이 두 명 이상이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


아무도 없을 때야 비로소 물에 들어가 수영도 하고 물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어.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왜 이런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부끄러움이 많았어. 남들 앞에 나서는 거 자체를 무서워했다고 할까?


한 번은 오빠가 유치원 재롱잔치를 하는 비디오가 있었는데 나는 거기서도 엄마 치맛자락 뒤에 숨어서 붉어진 얼굴로 온갖 인상을 쓰고 있더라고.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이 나와서 장기자랑 하라고 하는 게 제일 싫었고 누가 나에게 말을 걸기라도 하면 얼굴이 붉어져서 얼마나 창피하던지.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학교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어. 항상 주위 친구들이 초대받는 것만 봤었거든. 나는 이번에 처음 초대를 받아서 너무 신이 나더라고. 무슨 옷을 입을지 집에서 최대한 예쁜 옷을 골랐어. 그리고 당일이 됐어. 다른 친구와 함께 그 애 집으로 갔어. 아파트였는데 초인종을 누르니 문이 열렸고 문이 닫힌 후에도 나는 문 밖에 있었어. 동행한 친구만 들어가고 나는 들어가지 못했지. 그 순간 양말에 구멍이 났다는 걸 알았거든. 동행한 친구가 나를 찾으러 나오길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한참을 계단에 앉아있었지.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그 집에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움직일 수 없었어.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 친구가 내 이야기를 했나 봐. 갑자기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나오더니 내 옷깃을 잡고 끌어당겼어. 나는 창피해서 못 들어간다고 버텼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지만 말이야. 여하튼 친구 엄마까지 나와서 나를 설득하셨지만 결국 포기하시고 음식을 싸주셨어. 바로 위층이 친한 친구 집이었거든. 그 친구 집에 가서 먹었지 뭐야. 그 뒤로 소문이 났는지 여기저기서 생일 초대장을 주더라고. "네가 그 부끄럼 많은 애야?" 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난 그 뒤로 한 번도 가지 않았지.


또 한 번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에 가기 전이었어. 다른 반 여학생들이 모여서 춤연습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너무 궁금하고 보고 싶어서 교실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었어. 그때 반 아이 한 명이 나에게 들어와서 봐도 된다고 하더라고. 웃긴 게 또 거절은 안 해. 그래서 혼자 교실에 앉아서 처음 보는 아이들 춤추는 걸 끝날 때까지 봤던 기억이 나.


그랬던 내가 어른이 됐어. 여전히 부끄럽거나 시선이 집중되면 얼굴이 붉어져. 그래서 최대한 시선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해. 하지만 예전만큼 심하진 않아.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까 조금씩 변하긴 하더라고.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는 여전히 어렵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어. 내면의 용기가 겉으로 드러나기까지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 호텔에서 머무는 기간은 4박 5일. 길지 않아. 장기 여행을 위해 숙박비를 아껴야 하기 때문에 호캉스는 짧게 누리기로 했거든.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미션을 줬어. 이 호텔을 떠나기 전까지 극복해 보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4일째 되는 날 오전에 나는 미션을 수행했어. 오후보다 오전에 더 사람이 많거든? 나를 테스트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지. 나는 과감히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으로 걸어갔어. 예쁜 서양인들이 비키니를 입고 벤치에 누워있었지만, 모르는 동양남자가 풀장 안에 있었지만 나는 물속으로 들어갔어. 머릿속은 뒤죽박죽 도망가고 싶다고 외쳤지만 무시하고 수영장 끝으로 걸어갔지.


'괜찮아. 나는 경험이 필요해!!'


처음엔 구석에서 헤엄쳤어. 넓은 수영장을 두고 왜 저러나 싶었을 거야. 어쩜 아무도 몰랐을지 모르지만.

그리고 마침내 반대편 수영장까지 헤엄쳐 갔지 뭐야. 그리고 돌아봤더니 다들 자기 할 일 하고 있더라고.


'그래.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아. 그냥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돼.'


그리고 다시 내가 있던 구석까지 헤엄쳤어. 그때 갑자기 내 눈앞에서 동양 남자가 튀어나왔어.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그 사람은 잠영 전문가 인가 봐. 조용하다가 갑자기 내 얼굴 앞에서 튀어나왔거든. 잘못하면 부딪힐 뻔했다고요 아저씨! 화를 내고 싶었지만 너무 놀라서 심장을 부여잡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어. 몇 번 더 왕복해야 했지만 더 이상 나를 밖에 둘 자신이 없었거든.


한국으로 돌아가면 해야할 일이 늘었어. 수영장을 다녀야해. 나는 물을 정말 좋아하는데 마지막으로 물놀이 갔던게 10년 전인거야. 그러니 어색하고 불편하고 어려울 수밖에. 수줍음 많은 성격과 함께 비난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내가 아직 있더라고.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싶지만 안 되는 걸 어쩌겠어. 그냥 해야지 뭐.


이번에는 수영이었지만 다음엔 또 뭐가 될지 몰라. 앞으로도 계속 세상 밖으로 나가는 연습을 해야 해. 호기심 많고 두려움 없고 용기 있던 내가 왜 이렇게 겁쟁이가 된 건지 자책하기 전에 나를 방안에만 가둬뒀단 걸 기억해야 해. 내가 겁쟁이가 아니라 그동안 세상밖에 나오지 않아서이니까.


이번 여행은 나를 찾는 여행이야. 이번에 느낀 수줍음이 바로 내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란 걸 깨달았거든.

나를 세상밖으로 꺼내놓는 연습이기도 하고 말이야.


명심해. 경험하지 못해서 불안하고 두려운 거지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는 걸 말이야.

나도 그리고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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