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가 준 작은 변화의 기쁨
치앙마이에서의 일상은 모든 게 예상 밖이었어.
묵고 있던 게스트하우스는 공용 욕실과 주방을 함께 쓰는 곳이었지만, 정이 들어 어느새 편안한 휴식처가 됐지. 공용 욕실이라 해도 불편하지 않았고, 정갈한 분위기 덕에 작은 커뮤니티 안에 속해 있는 기분이 들었어. 새하얀 침구도 주기적으로 교체해 주고, 세탁기도 편하게 쓸 수 있어서 그야말로 아늑함 그 자체였지.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홍수가 닥친 거야. 치앙마이에 도착한 지 14일째 되는 날이었어. 하루 한 번씩 비가 내리긴 했지만, 우기라서 그런가 보다 했지. 13일째 밤도 비가 많이 오긴 했어도,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쨍쨍 내리쬘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그런데 다음 날, 숙소 앞 골목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어. 오후쯤이면 물이 빠질 거라는 사장님의 말을 믿고 다시 방으로 올라갔는데, 이튿날 아침 거실에서 내려다본 숙소 1층은 전부 물에 잠겨 있었어. 사장님 말씀대로라면 이번 홍수는 보기 드문 일이었지.
연이은 폭우로 핑강이 범람하면서, 주변이 전부 물에 잠겼어. 하늘은 맑고 해는 쨍쨍했지만, 길은 물에 덮여 꼼짝없이 며칠간 숙소에 갇히게 된 거야. 처음엔 ‘며칠 후면 괜찮아지겠지’ 싶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오히려 물이 더 불어났고 급기야 단수 예정이라는 소식까지 들려왔어. 숙소 주인도 점점 숙소 정상 운영이 어려워지니 이사를 권했어. 처음엔 나도 지금 이곳에 남고 싶은 마음이 컸어. 적응된 이 편안함을 떠나기 싫었거든. 하지만 며칠을 갇혀 지내며 식량도 부족해지자 결국 새로운 숙소를 찾아보기로 결심했어.
마침 한 방 남아 있던 숙소가 올드타운에 있었어. 가격도 괜찮고 일단 장기 숙박이 가능해 급하게 예약을 마쳤어. 그런데 예약을 끝내고 보니 리뷰에 불친절하다는 둥, 방이 낡고 더럽다는 둥 온갖 부정적인 평가가 가득한 거야. 당장 환불도 불가능한 상황이라 리뷰는 더 이상 읽지 않기로 했어.
새로 도착한 숙소는 예상 그대로였어. 방은 싱글 침대 두 개로 가득 차 있었고, 폭이 좁은 테이블에 작은 냉장고가 놓여 있었는데, 곰팡이 핀 곳이 보여 항균 티슈로 닦아야 했어. 화장실 벽과 바닥은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고, 방도 어둡고 작았지. 친구와 내 짐을 들여놓으니 이 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막막했어. 바닥에 짐을 둘 수도 없어 필요한 것만 꺼내 써야 했어. 친구와 나는 말이 없었어.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거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지. 간단한 식기와 생활용품을 사기 위해 근처 마트에 들렀다가,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을 때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졌어. 개인 화장실이 있어서 샤워 용품을 두고 쓸 수 있었고, 단단한 침대 덕에 허리도 편했어. 호텔이라 청소도 해 주고, 테라스에 빨래를 널어 햇볕에 말릴 수도 있었어. 게다가 편의점과 야시장도 있어 생활이 훨씬 편리했어. 처음엔 불안했던 이 숙소가 점차 마음에 들기 시작했어.
이제 홍수는 마치 없었던 일처럼 느껴졌어. 올드타운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 평화로웠고, 주변은 고요했지. 이사 올 때는 걱정이 많았지만, 결국 더 만족스러운 공간을 찾게 된 셈이야.
치앙마이의 홍수는 당황스럽게 찾아왔지만, 그 덕분에 새로운 여유와 작은 기쁨을 만날 수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