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24년 1월 퇴사를 하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운동과 식단 조절을 시작했다. 건강을 위한 운동은 체중 감량을 위한 다이어트로 변질되었고 원하는 만큼 체중이 줄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삼시세끼 꼬박꼬박 칼로리를 계산해 가며 먹던 식단은 점점 지루해졌고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마저 잃었다. 그리고 최대한 품이 들지 않는 대충식으로 변해갔다.
어릴 적 나는 나 자신에게 음식을 대충 먹이는 데 익숙했다.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배고프면 냉장고에서 있는 걸 꺼내 먹는게 전부였다. 물론 아빠가 퇴근한 뒤에는 제대로 된 밥을 먹긴 했지만, 그것도 눈치를 보며 먹는 ‘눈칫밥’이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다 보니,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법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20살이 되어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 나는 나름 요리를 잘해 먹었다.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낯설지 않았고,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는 데도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우울한 일이 겹치면서, 나는 점점 음식을 멀리하게 되었고 다시 대충 끼니를 때우는 습관으로 돌아갔다.
결혼 후 다시 따뜻한 가정을 꿈꾸며 투닥투닥 요리하는 소리가 집안에 가득하길 바랐다. 그래서 남편이 오길 기다리며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었다. 할 줄 아는 요리가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요리책을 보고, 유튜브를 보고 새로운 음식에 도전했다. 그러나 남편은 배달 음식을 좋아했다. 힘든 하루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그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먹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나도 요리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남편과 같이 배달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요리를 할 때보다 누가 해주는 요리를 먹는 게 생각보다 편했다. 메뉴 고민, 뒤처리 고민, 설거지등 많은 것들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런 내가 친구와 함께 치앙마이에 가게 되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는 외곽에 위치해 있어 배달음식이나 주변 식당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친구는 직접 요리해서 먹는 편이라 늘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 왔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친구를 따라 시장엘 갔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할 줄 아는 요리도, 생각나는 음식도 없어서 그냥 생오이와 당근을 씻어 먹으며 끼니를 해결했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고, 그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친구는 의아하게 바라보며, 단순히 채식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친구는 나와 전혀 달랐다. 친구는 집에서 베이킹을 하고, 예쁜 접시에 음식을 정성스럽게 차려 먹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는 나에게도 음식을 종종 만들어주었다. 대충 뚝딱 만드는 것 같았지만 음식은 맛있고 그럴싸했다.
옆에서 친구의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그녀는 주로 소금과 올리브 오일만으로 간단하게 요리를 했다. 생각보다 쉬워 보였다. 그리고 맛이 있었다. 그렇게 두 달을 함께 지내면서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이렇게 해 먹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건강한 재료로 쉽게 요리하는 방법을 배우면 나를 조금 더 귀하게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치앙마이에서 제일 좋아한 음식은 그릭 요거트다. 치앙마이 코코넛 마켓에서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그릭 요거트를 만났다. 샛노랗게 잘 익은 망고를 반으로 갈라 작은 깍둑모양으로 자르더니 요거트 위에 올려주고, 연둣빛 생 아보카도도 망고와 같은 크기로 잘라 넣어줬다. 그 위에 샤인머스캣 몇 알과 바나나를 어슷 썰어 요거트 주변을 감싸듯 놓아주었다. 마지막으로 가운데 벌집을 올려 방금 짜낸 듯한 벌꿀을 뿌려 나에게 내민 그 요거트.
나는 하늘로 높게 자란 코코넛 나무 숲을 바라보며, 자갈밭 위 작은 테이블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그 요거트를 떠먹었다. 그동안 먹었던 요거트와는 전혀 달랐다. 나는 내가 그동안 왜 이렇게 먹지 않았는지 떠올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과일이 비싸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대충 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과자나 배달음식에는 돈을 쓰는 모순된 나를 깨닫고, 나를 위해 더 좋은 선택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내가 좋아하는 한 끼를 직접 차리기 시작했다. 과자와 배달음식을 먹는 돈을 아껴 신선한 과일을 주문했다. 딸기, 망고, 용과 같은 과일을 넉넉히 준비해 직접 만든 그릭 요거트에 넣어 먹었다. 그리고 간단한 채소 샐러드나 따뜻한 수프를 곁들이며, 매일 아침 나를 위한 특별한 한 끼를 차렸다. 정말 맛있었다.
단순히 과일이 많아서 맛있는 게 아니라, 나를 대하는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 맛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 것이다. 이제 내가 차리는 한 끼에는 나를 아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고, 그 행복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요즘 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즐기며 운동도 기분 좋게 하고,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드는 일에도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다.
치앙마이는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줬다. 그리고 내가 나를 대접하는 특별한 한 끼는 그 마음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게 해 줬다. 이렇게 시작된 작은 변화가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거라 믿는다.
"세상의 예쁜 것들을 너에게 주렴. 물 같은 교양을, 바람 같은 사유를, 햇살 같은 마음을 자신에게 주면서, 너답게 살아.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도, 더러운 진창 속에서도 홀연히 아름답게. 필 때도 질 때도 꽃처럼. 그리 고고하란 말이야" -까멜리아 싸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