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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기유 Oct 07. 2024

잘 다녀왔니?


지난 이야기: 이사 첫날밤, 호된 신고식을 치른 '나'는 다음날 전입신고를 정식으로 마쳤다.



마치 커다란 환기구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지하철역 입구로 들어가고 있다. 버스정류장에 서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자니 좀 무서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에 반해 내 가슴은 두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첫 출근날 아침이었다. 어서 회사에 도착해서 내 자리를 보고 싶다는 설렘과 ‘몇 주 전까지 학교를 다녔는데 내가 갑자기 회사원이라니?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새삼스러운 당혹감이 교차했다. 첫 출근이다 보니 신경 쓰이는 게 많았다. 지하철을 탄다면 한 번 환승을 해야 해서 첫 출근 수단은 한 번에 갈 수 있는 버스를 선택했다. 이 시간이라면 갑작스러운 정체가 생겨도 문제없다. 1일 차 신입사원답게 군기 바짝 들어 집에서 일찍 나온 보람이 있다. 사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신고 있는 신발도 낯설었다.


아침에 나름 ‘회사원답게’ 코디를 하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낯선 내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어릴 적 보았던 ‘젊은 어른’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였구나 싶었다. 그들도 처음에는 이렇게 어색했겠구나. ‘어색함’이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방문을 열고 나왔을 때, 식탁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눈과 입을 크게 열며 “와아!”라고 외치더니 “하하하하, 호호호호”하며 웃었다.

“갑자기 아가씨가 되었네!”

아주 짓궂기 그지없는 말투다. 

“이상해요? 안 어울려요?”

할머니는 찻잔을 내리고 손사래를 쳤다.

“다 그러고 입고 다니던데 무얼. 처음이라서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괜찮아. 잘 어울립니다.”

놀리는 듯한 말을 던지고 할머니의 눈이 바쁘게 위아래를 훑는다. 밝은 표정으로 보아 ‘합격’ 같았다. 할머니는 식탁을 짚고 영차하고 일어서더니 내 쪽으로 왔다.

“첫 출근이구나. 회사 사람들한테 인사 잘하고. 조심해서 잘 다녀와라.”

“네, 다녀오겠습니다. 점심 식사 잘하시고요.”

“그래. 저녁은 먹고 오니?”

“어······.”

첫날부터 바로 회식을 할지 어떨지 몰라서 눈알만 굴리고 서 있으니 할머니가 몸을 돌려세우고 밀었다.

“어서 나가 봐.”

어색한 펌프스 구두를 신고 복도를 최대한 조용히 걸으려 애쓰다가 엘리베이터홀로 꺾기 전에 뒤를 돌아보니 긴 복도 저편에서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걱정과 대견함과 신기함이 담긴 미묘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수호신 같기도, 어린아이 같기도 했다. 가슴속 어딘가가 아렸다. 내가 목례를 하니 할머니는 어서 가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나의 인생 첫 직장 출근은, 알게 된 지 10일 밖에 안 된 할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시작되었다. 인생 정말 모를 일이었다.



*


건물 로비에서 아직 ‘방문자’ 신분으로 방문 접수를 하고 카드키를 받았다. 건물에서는 어떻게 관리를 하는 건지 전체적으로 청량한 레몬향이 은은하게 감돌았는데, 면접 때 같은 향을 맡았던 기억이 살아났다. 전형적인 검은 정장을 입고 이곳에서 카드키를 받았을 때 얼마나 긴장했던가. 지금도 긴장은 되지만 한결 마음이 편했다. 30층이 넘어가는 고층에 위치한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귀가 먹먹해졌다. 이런 것도 반복되면 익숙해질까 궁금했다. 모든 게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일찍 도착한 사무실 층에서 마주친 어느 직원이 빈 회의실로 안내를 해 고요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인사담당자가 들어오며 인사를 했다. 아이스브레이크 후 본격적으로 입사 안내가 시작되었다. 사원증을 건네받았을 때 그곳에 또렷이 적힌 내 이름을 보고 ‘정말 직원이 되었구나’하는 실감을 느꼈다. 긴 설명 끝에 내가 준비한 인적사항 증빙 서류를 제출하고, 인사담당자가 내민 근로계약서를 읽고 서명을 하는 것으로 입사 절차가 끝났다. 인사팀 직원은 자리로 안내할 테니 따라오라며 일어났다. 속속 출근하는 직원들은 낯선 내 얼굴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맞대고 대화에 ‘신입’이라는 단어를 올리며 멀어졌다. 내가 지금 정말 낯선 집단에 발을 들여놓았구나 하는 실감이 확 났다. 회의실 구역에서 사무 구역으로 오는데도 유리문이 막고 있었고, 사원증을 찍고 자동문이 열리는 걸 보여준 직원은 곧장 오른쪽으로 꺾더니 큰 화분 뒤쪽에 나타난 자리를 가리켰다.

“여기가 진기유 씨 자리예요. 음, 아직 시간이 일러서 부서 분들이 아무도 출근을 안 하셨네요. 앉아 계시면 곧 오실 테니까 기다려 보세요.”

부서와 부서 사이에는 가슴 높이의 흰색 사무용 서랍장이 벽처럼 놓여 있었고, 책상 간 파티션은 20센티미터 정도만 올라와 있어서 한 층이 시원하게 다 보이는 구조였다. 출근한 사람 비율은 아직 절반도 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카펫 위에서 거북이처럼 느리게 발을 끄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화분 뒤에서 푸근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나른한 미소를 머금고 나타났다. 일어나 인사하는 나를 보더니 입모양으로 ‘오’ 하고 조용히 놀라더니 천천히 내 의자 뒤를 지나간다. 몇 걸음 더 가다가 느리게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본다.

“아, 오늘부터 출근하신다고 들었는데···. 새로 오신 분인가 보네요.”

이 분의 시간은 0.5배속으로 가는 걸까? 느리고 짧은 대화가 오간 뒤 그분은 내 옆의 옆자리에 앉았다. 

“음···, 여기가 사수인데 잘 알려줄 거예요.”

‘여기’라 함은 내 옆자리 사람을 말하는 듯했다. ‘사수’는 뭐지? 문맥 상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일 거라 유추하고, 나름 챙겨주려고 말을 걸어 주신 마음에 미소로 답했다.

“네, 헤헤.”

얼마 뒤 엘리베이터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더니 그중 두 명이 우리 부서로 들어왔다. 곧바로 일어나 인사했다. 면접에서 봤던 얼굴들이었다.



내 사수는 30대 초반의 여자로, 이름은 배유연. ‘유연 선배’라고 부르기로 했다. 일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나 업무 통화를 하는 모습이 차분하고 깔끔했다. 우리 부서는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나까지 총 열한 명으로, 오늘은 부장님이 없어 환영회는 내일 한다고 설명받았다. 유연 선배는 내가 할 업무에 대해서 큰 틀부터 시작해서 세부적인 내용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가르쳐주었고, 가르치면서 이면지에 끄적이는 글씨가 귀엽고 깔끔해서 자꾸만 눈이 갔다. 중간중간 직전에 설명한 내용에 대해 기습질문을 받아 간담이 서늘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에는 쏟아지는 신상 질문에 대답하고, 거래처에 대한 우스갯소리를 듣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고, 오후에는 참조로 들어간 이메일들을 읽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어 있었다.

“담당할 업체 정해지면 더 자세히 알려줄 테니까 일단 오늘 알려준 내용들 잘 숙지해 둬요.”

“네!”

유연 선배는 집 가는 방향이 같아 ‘지하철로 퇴근하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함께 퇴근에 나섰다. 회사 건물 지하에서 지하철역까지 이어진 길, 긴 지하도에서 방향을 헷갈리지 않고 지하철 승강장으로 가는 길, 최단 환승 루트 등. 

회사도, 업무도, 사람도 아직 하루밖에 경험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잘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편안했다. 대낮같이 밝은 하늘 아래 퇴근하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도르르륵.

“다녀왔습니다!”

집으로 들어서며 방충망을 끝까지 밀고 현관문을 닫는다. 온종일 열어 둔 현관문을 퇴근하는 내가 닫는다. 마치 하루의 마감을 하는 듯한 기분에, 앞으로는 내가 문 닫는 담당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TV방에서 할머니가 나온다. 낮잠을 주무셨던 건지 누가 봐도 자다 깬 얼굴인데 한껏 환한 미소를 보인다.

“잘 다녀왔니?”

집에 왔다는 기쁨에 나도 한껏 미소를 지었다. 이 집에는 잠을 뒤로하고 나를 맞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아직도 이 상황이 신기하다. 

“저녁은? 안 먹었지?”

“네. 할머니도 아직 안 드셨죠?”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엌으로 향했다.

“너 저기, 처음으로 출근하고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낮에 해 놓은 국 있으니까 그거 같이 먹자. 씻고 와.”
 엄연히 말하면 나는 하숙을 들어온 게 아니고, 식사는 각자 알아서 하는 게 원칙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할머니 머리 위 헤어롤마저 사랑스러워 보였다. 소고기뭇국을 후후 불어 먹으며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할머니는 불필요한 질문도, 과한 표현도 없이 담백하게 반응하셨다.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인 것 같아 다행이네. 가장 가까이서 지내야 할 사람일 테니 말이야. 내일 환영회를 한다고? 동료들이 너를 잘 챙기는구나.”

할머니의 반응을 보며 적잖이 놀랐다. 얘기를 시작하기 전, ‘직장생활도 안 해보셨을 텐데 내가 이런 말 한다고 잘 이해하시고 재미있게 들으실까?’라고 걱정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건 걱정이 아니라 무시였다는 걸 깨달았다.

“할머니, 그런데 환영회는 누가 새로 오면 으레 하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딱히 저를 챙기고 그런 건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

할머니는 숟가락으로 뜬 국물을 들이켜곤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거라곤 없는 거야. 그렇게 한 회사의 같은 부서에서 만나는 것부터가 너랑 보통 인연이 아니라는 것이고, 부장까지 모두 모였을 때 환영회를 하겠다고 한다는 게 얼마나 정성이 있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그런 게 다 마음인 거야.”

살짝 갸우뚱했다. 그건 부장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하지만 할머니 말의 내용보다 목소리에 묻어 나오는 세월에 압도당해 가만히 입을 다물고 그 의미를 곱씹어보았다.

“할머니, 할머니랑 저도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제가 취직해서 집을 알아보던 그때 할머니도 방을······.”

“꺽”

내가 일시정지하니 할머니는 “아이고, 미안. 식사 중에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돌연 웃음바다가 덮친 식탁으로 어렴풋한 작은 등이 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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