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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기유 Sep 30. 2024

첫날밤 사건


지난 이야기: 아직 이사 첫날인데도 놀랄 일이 많았던 '나'. 이윽고 이사를 마치고 맞이한 첫날밤. 컴컴한 새벽 시간 누군가가 복도에서 창문을 더듬는다.



덜거덕, 덜거덕!

검게 보이는 손그림자가 연신 창문을 열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이쪽 모서리에 손을 넣어 밀어보고 다른 쪽 모서리도 밀어보고 이제는 유리면에 손바닥을 붙이고 밀어대고 있었다. 창문은 안쪽부터 구식 새시, 새로 교체한 바깥쪽 새시, 방충망 구조로 되어 있고, 안팎 창문은 모두 잠가 두었다. 분명 잠금쇠가 잠겨져 있는 게 어스름 속에서 보이는데도 무서워서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서 들리고 있었다. 앉아 있는데도 다리가 그야말로 덜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대담한 거지? 검은손은 몰래 하는 기색이라고는 없이 너무나 당당하게 창문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처음 겪는 공포에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도 못 들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뭐지?”라고 혼잣말을 한 게 다였다. 조금 정신을 가다듬은 나는 힘겹게 일어서서 창가로 다가갔다. 밖에 있는 사람은 창문 방충망을 자꾸만 이쪽으로 당겼다 저쪽으로 밀었다 하며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계속해서 창문을 열려고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오들오들 떨리는 손을 창틀에 가져다 대고 이미 잠겨 있는 창문을 손으로 꽉 잡고 버텼다. 유리를 쾅 쳐서 놀라게 해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화나게 했다가 나중에 보복하러 또 올까 봐 겁이 났다. 그저 방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창문을 사이에 두고 여자 혼자 벌벌 떨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가만, 그런데 왜 이 방이지? 왜 내 방 창문만 집중적으로 노리는 거지?’

이미 상대는 이 방에 여자가 있는 걸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오금이 저린다는 말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무릎 뒤가 파르르 떨리면서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휴대폰으로 112에 신고하기로 마음먹고 바닥으로 몸을 굽히려던 순간, 갑자기 창가에 붙어 있던 실루엣이 멀어졌다. 몇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더니 현관문 손잡이를 만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관문은 잘 잠갔던가? 도어록 없이 열쇠만 사용하는 문이었는데, 분명 걸쇠부터 손잡이에 내장된 잠금장치까지 모조리 내 손으로 걸어 잠갔던 걸 떠올렸다. 심장박동이 귀를 넘어 머릿속에서도 울릴 지경이 되고 현기증이 났을 때, 갑자기 발걸음이 멀어져 갔다. 사방이 조용해졌다.


조용해지고 나서도 몇 초 간 그대로 서있다가 비로소 내가 식은땀에 흠뻑 젖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불 위로 주저앉았다. 수많은 생각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왜 이 집이고 내방일까? 현관 건너편 쪽으로도 부엌과 다용도실 창문이 있는데. 어쩌다가 내가 타깃이 되었을까? 

‘잠깐, 부엌 창문 지금 열려 있잖아!’

좁고 긴 창문이라 그 창문은 열어두고 잔다고 할머니가 말했던 게 떠오르며 등줄기를 타고 저릿한 소름이 지나갔다. 무서워서 확인하러 갈 수가 없었다. 복도를 향해 열려 있는 창문을 내 눈으로 보면 그대로 기절해 버릴 것 같았다. 그 너머에 시커먼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대체 누구일까? 낮에 건너편 동에서 이삿짐을 나르는 모습을 쭉 지켜본 사람일까? 아니면 같은 층 이웃일까? 돌연 떠오르는 얼굴, 저녁에 신문 수금하러 온 남자. 내 방을 들여다봤었지. 내가 이 집에 살러 온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었지. 나는 편한 실내복을 입고 있었고. 여자 둘만 사는 집이라는 걸 들키다니. 야생에 놓인 먹이사슬 최하위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망연자실하며 눈알을 굴리는데 또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할머니와 젊은 여자 단 둘이서 사는 집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또 있었다. 경비아저씨랑 그 옆에 앉아 있었던 할아버지들. 절망감이 들며 고개를 저었다.

‘경비아저씨를 믿을 수 없다면 이 집에 살 수가 없어. 아닐 거야. 정말 그건 아닐 거야.’

하지만 할머니가 1102호라고 반복해서 말했던 것이 생각나며 심장이 다시 쿵쾅대기 시작했다. 의심을 한 번 시작하니 마치 냄비에서 김이 나오듯 걷잡을 수 없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멈추려면 의심을 부채질하는 생각의 불씨를 끌 수밖에 없었다.

‘당장 인터폰을 들어볼까?’

지금이라면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탔다고 해도 아직 1층에 도착하지 못했을 시간이었다. 경비실로 인터폰을 해보고 바로 받는지 확인을 해볼까? 부디 경비아저씨가 바로 받아서 용의 선상에서 제외할 수 있길 바랐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려다가 어둠에 잠긴 집안의 정적에 발이 멈췄다. TV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 보아 할머니는 안방으로 가서 주무시는 것 같았다. 인터폰은 안방과 가까운 거실 벽에 붙어 있다. 만약 경비아저씨가 바로 받는다면 짧게라도 대화를 하게 될 것 같았고, 바로 끊어버린다 해도 콜백이 걸려와 할머니가 깨실까 봐 단념했다. 방으로 들어와 눕지도 못하고 앉은 채 시간을 보냈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 뒤로는 목이 타서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가고, 또 물 마시고, 화장실 가는 것의 반복이었다. 그러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고 나서 이불을 반쯤 덮고 누워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무슨 소리였는지 몰라도 또 복도에서 들려온 툭 떨어지는 소리에 잠이 깬 듯했다. 이쯤 되니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내일이 출근날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몸살에 걸린 느낌이었다. 아침이 되면 할머니랑 진지하게 얘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눈을 붙였다.




*


아침 햇살을 쳐다보며 식탁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으니 안방에서 할머니가 나왔다. 나에게 눈부신 미소를 보이며 “잘 잤니?”라고 인사를 건네셨다. 아침 댓바람부터 ‘누군가 이 집을 노리고 있어요!’라고 했다간 할머니의 심장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나는 짐짓 평범한 인사를 했다. 할머니도 잠을 깨우는지 옆에 앉아 물을 마시며 정적을 지켰다. 잠시 시계 초침 소리를 벗 삼아 앉아 있다가 할머니가 정적을 깼다.

“환기해야지.”

혼잣말을 하고 일어나 거실 베란다 창문을 연다. 그리고 현관문을 향해 걸어간다. 현관문을 떠올리자 그 너머의 복도가 떠오르며 간밤의 공포가 다시 되살아났다. 부리나케 일어나 할머니를 막아 서니 할머니가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본다.

“왜 그래?”

둘 다 눈만 끔뻑거렸다.

“뭐니?”

“할머니, 일단 여기 앉아 보세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새벽에 겪었던 일련의 사건을 들려드렸다. 할머니는 처음에는 몸을 뒤로 빼고 겁에 질린 눈빛으로 듣다가 갑자기 한 손을 가슴팍 높이로 들었다. 너무 놀라서 심장에 무리가 간 걸까? 걱정하며 쳐다본 할머니의 얼굴에 옅은 웃음기가 돈다.

“할머니?”

“아, 하하. 뭔지 알겠다, 얘. 우유 아줌마였을 거야.”

“우유··· 아줌마요?”

할머니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아유, 얘. 정말 놀랐겠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글쎄! 말을 할걸.”

“우유 아줌마가 왜···. 왜 제 방 창문을 열려고 해요?”

“내가 평소에 우유 주머니가 현관문 손잡이에 달려 있는 게 지저분해 보여서 싫어하거든. 그래서 항상 우유 주머니를 그 방 창문에, 방충망 안쪽 창살에다 걸어서 넣어 놨었거든. 그런데 어제 창문 바꾸면서 그 주머니를 치워 버렸으니, 아줌마는 주머니가 어디 갔지 하고 계속 더듬어 본 걸 거야.”

이걸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내가 허탈한 웃음을 흘리니 할머니도 다시 웃었다.

“아줌마가 우유를 놓고 갔을 거야. 확인해 보자.”

할머니가 잠금장치를 돌리고 현관문을 열고 한 단 낮은 복도에 내려갔다. 나도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복도 바닥에는 신문이 있었고, 현관문 손잡이에 빳빳한 새 우유 주머니가 걸려 있었다. 안에는 우유가 들어 있다. 

‘아, 현관문 손잡이 소리는 이 주머니를 다는 소리였구나. 툭 떨어진 소리는 신문이었구나.’

안도감에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우유 주머니 예전처럼 창문에 거세요.”

“아니야. 이제 네가 지내는데. 현관 손잡이에 걸면 돼.”

“그거 지저분해 보인다고 아까······.”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벌레 들어오니까 빨리 여기 방충망 닫아야 돼. 얼른 들어가.”


*


첫날밤 오해로 인한 호된 신고식을 치르긴 했지만,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곳으로 마음을 굳히고 그날 오전 곧바로 전입신고를 했다. 주민센터 직원은 방 한 칸으로 전입신고 하는 게 맞는지 두 번을 물었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종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저도 신기해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았다. 부동산계약서 뒷면에 초록색, 빨간색, 보라색 도장이 찍혔다. 혼인신고도 출생신고도 아닌 ‘전입신고’로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 내게도, 할머니에게도.






안녕하세요, 진기유입니다.

터질 듯한 심장 박동이 귓가에서 울리던 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요.

독자님들 편안한 밤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야기는 이제 시작입니다.


바로 그 문제의 창문입니다. 분홍빛 여름 노을이 물든 벽이 예뻐 찍어 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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