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가설
무의식에 억압된 기억
세 번째 가설을 찾아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막혀 있던 둑이 터지듯, 무의식에 억눌린 감정들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와, 완전히 잊고 지냈던 또 하나의 장면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저는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어린아이였습니다. 제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겁에 질린 채 누군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 속 그녀는 빨간 도깨비의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잔뜩 화가 난 얼굴이 무서웠으머, 매질은 아팠습니다. 혹시 그녀가 누구였을지 짐작이 가시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경험을 겪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과거 우리는 '사랑의 매'라는 이름 아래 신체적 처벌을 당연시하게 받아왔습니다. 부모로서 자녀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그 행위에는 반드시 폭력성이 내포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처음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애착'을 배우게 되고, 그런 부모로부터 *체벌을 받은 아이는 사랑과 고통을 동시에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감정은 무의식에 깊은 혼란과 상처로 각인되는데, 이후 학습된 양가감정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지속되며, 결국 대인관계 내에서 왜곡된 애착 양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체벌: 몸에 직접적인 고통을 주어 벌하는 것.
그뿐만이 아닙니다. 체벌은 생물학적으로도 뇌의 기능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자기조절 능력과 충동 조절 능력을 상실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과잉 불안이 고착화되거나, 스트레스 호르몬 증가로 인한 면역력 저하, 수면 장애, 발달 지연 등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폭력성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런데도 체벌이 진정 아이를 위한 훈육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체벌이란 그저 분노조절에 실패한 어른들의 감정 분출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그런 아픔이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현재와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상처는 치유될 수 있으며, 관계 또한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 본보기로 지금의 저는 어머니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여기에는 일말의 의심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틀어진 관계를 바로잡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때로는 관계를 단절하는 선택을 내리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미 관계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무의식 깊은 곳에 남은 상처는, 이따금 삶을 뒤흔들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Part 1. 숨은 나를 찾아서
※ 지속적으로 글을 다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