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가 니체의 조언
살아가는 자세
세 가지 가설을 낸 후, 저는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런 저를 버티게 해 준 것이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책입니다. 저는 당시에 니체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평생 동안 편두통과 위장 장애로 고생하며, 말년에는 심각한 시력 저하와 정신질환에 시달린 니체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과 연민의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의 말대로, 어쩌면 제가 심연을 너무 오랜 시간 들여다본 탓에 정신이 이상해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자, 그 기억들을 다시 무의식 저편에 묻어버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 둘 마주한 트라우마는 꼭 생명력을 부여받은 듯, 절대로 사라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일 과거의 일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쓸모없고 더러운 존재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나치게 순진했던 자신을 원망함과 동시에, 결국 이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운명이었다는 파국적인 결론에 치닫았습니다. 저는 '운명의 여신은 장난을 좋아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기 시작했고, 여신이 내린 형벌을 피할 수 없는 저주에 걸렸다는 망상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자 내 안의 목소리는 제게 각종 상스러운 말을 퍼부으며, 비난과 조롱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게서 삶이란,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저는 니체의 말을 통해 다시금 용기를 내보려 했습니다.
"삶은 고통이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비록 삶이 고통스러울지라도, 내 안 어딘가에는 살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대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이런 작은 바람조차도 그 목소리가 알게 되면 사달이 날까 봐 염려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무의식 어딘가에 남몰래 희망의 씨앗을 심어둔 채 달아났습니다.
"신은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 반대의 것을 창조해야만 했다. 그렇게 악이 탄생되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이 문장은 니체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기본 교리에 의문을 품고, 스스로가 재구성한 성 삼위일체의 정의입니다. 그가 말하는 성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악'으로 이루어지며, 신이 전능하다면 악도 그의 계획 안에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도출되었습니다.
성 삼위일체를 생각했을 때 니체의 나이는 고작 열두 살이었습니다. 신앙심이 누구보다 깊은 아이였던 니체는 이후 신학공부를 포기하고 철학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니체의 말을 통해 저는 더 이상 고통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고통의 최종 목적지가 죽음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악의 근원이라 여기는 죽음이, 사실 신이 만든 것이라면 이제는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신의 계획안에 존재하는 신성한 창조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살아만 있다면 이미 그 자체로 좋은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나를 괴롭히는 그 목소리로부터 승리를 거머쥐고, 운명의 여신조차 대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제는 죽음마저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인간은 죽게 될 존재인데, 그것을 두려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또한 살아가는 게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것을 보아하니, 죽음은 오히려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게 해 줄 구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신의 안식처이며, 본디 악한 삶이 인간을 붙잡아 두기 위해 이간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컨대 이 같은 위험한 발상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생을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기꺼이 반갑게 맞이하겠다는 마음가짐을 지니게 했습니다.
Part 1. 숨은 나를 찾아서
※ 지속적으로 글을 다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