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이라고? 내가?
기가 찰 노릇이다.
“맙소사, 내가 벌써 60살. 환갑이라니?” 내 나이한테 쾅! 뒤통수 맞은 기분이다. 교통사고처럼 느닷없이 닥친 것도 아니고, 훌쩍 건너뛴 것도 없이 한 살, 한 살 차곡차곡 먹어온 나이다. 그런데 이리 새삼스럽다니….
그것도 그냥 한 살 더 먹은 것이 아니라 한 바퀴 돌아온 환갑還甲, 한 생生을 살았다는 것이다. 흔히들 지금이 앞으로 살아갈 날 중에 가장 젊은 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지금껏 살아온 날 중에 가장 늙은 날이잖아.
효도여행이라니 무슨 소리
딸 내외가 베트남으로 효도관광 겸 환갑여행을 가자고 한다. “난 싫어. 안 가!” 딱 잘라 말했다. 그냥 해보는 빈말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환갑까지 사느라 고생했다 위로받을 수도 있다. 죽을 날도 멀지 않으니 살아있을 때 잔치라도 벌여 겸사겸사 챙긴다치자. 그러나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환갑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징그럽다. 징그러워~" 손사래 치자 "엄마는 또 유난이네. 1년마다 오는 생일에도 케이크에 불 붙이고 축하했잖아요. 그런데 환갑이면 대단한 날이지. 안 그래?" 사위랑 나름 여행 계획을 짜두었다고 밀어붙인다.
그건 그렇지. 누구나 그러하듯 거저 살아진 날이 있던가?
이 나이 되도록 공중전까지는 몰라도 산전수전山戰水戰 겪으며 애쓴 건 사실이지. 하루하루 숨차게 살았고 한 해 한 해는 정신없이 보냈다.
그냥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아니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뜨거운 햇덩어리를 번쩍 들어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놓는 것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차질 없이 오고 간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정확한 보폭으로 행성을 운행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았고, 1년씩 살다 보니 내 나이 60살이다. 그렇게 60년 살아냈으니 그 고단함이야.
태어난 지 100일이면 백일잔치다, 1년이면 돌잔치다 하는 마당에 60년을 별 탈 없이 살았으면 ‘큰 일한거지. 암, 큰일 했지.’ 나름 합리화시켜 본다. 한편으로는 버틴다고 환갑 나이를 물릴 수 있겠는가?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자 싶어 "그래 가자. 가!”
나이 먹은 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엄마! 기념사진도 찍어야지." 인천공항 도착하자 딸이 트렁크에서 <경> 노영임 여사 환갑 기념여행 <축> 현수막을 꺼내 펼친다. 그리고 “자, 엄마! 웃어요. 스마일~”을 주문한다. “아, 제발 좀 그만해. 그만!” 부르짖듯 화를 냈다.
참자, 참자했지만 <경축>이라는 말에 결국 터진 거다. 내 환갑이 우리나라 기념일도 아닌데 뭔 경축이람. 그리고 '노영임여사'라니 지금껏 '여사'라는 호칭을 들어본 적 없다. 거기다가 '환갑기념'이라고? 이렇게 사람들 많은 공항에서 현수막 펼쳐 들고 "나, 나이 먹었노라!" 광고할 일인가 말이다. 시작부터 심사가 꼬여있던 참이라 사소한 것에도 삐치고, 몇 차례 욱! 성질머리가 곤두서기도 했다
내 나이 60살. 늙긴 늙은 건가?
아버지 환갑을 떠올려 본다. 환갑잔치는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그때 나는 여중생으로 15살쯤이다. 환갑날 되기 며칠 전부터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건넌방을 차지하고 대추며 밤 등을 실로 꿰이고, 과자를 탑처럼 쌓아 올리고 있었다. 음식을 높이 고일수록 장수한다고 누군가 곁에서 귀띔해 준다. 그뿐인가, 돼지를 잡는다, 떡방앗간에 쌀가마니를 실어 나르랴, 마당에 기름칠할 솥단지를 걸으랴 야단법석이다. 환갑 당일 언니와 나는 한복을 차려입고 높게 쌓인 음식에 가려 얼굴도 보이지도 않는 아버지에게 큰 절을 올렸다. 아버지는 적어도 십 년 넘게 수명 연장을 보장받은 듯 마냥 흐뭇해하셨다.
그렇게 뻑적지근한 환갑잔치를 치른 아버지는 겨우 2년쯤 더 사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지금 그때 아버지 나이가 된 것이다.
환갑여행, 이런 호사를 또 언제 누려볼까?
수영장 달려있는 리조트 거실에서 보이는 뷰가 초록초록 끝내준다. 야자수가 줄지어 서 있어 이국적인 풍경 그 자체다. 유리문 열고 나가면 야들야들한 잔디밭이 쫘악~ 깔려 있다. 맨발로 걸어도 좋다. 거기다가 몇 발짝만 더 걸어 나가면 태평양인가? 대서양인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노을빛 물든 해변의 정취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나트랑에서 인터넷 평점 높은 식당만을 찾아다닌다. 메뉴판 위에서 아래까지 훑듯이 주문하여 베트남 음식문화 체험이라도 하듯 골고루 맛본다. 주전부리로 망고를 비롯한 열대과일은 신물 나도록 먹는다. 무엇보다 빼놓을 없는 것이 마사지 순례다. 누워있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밀가루 반죽하듯 연신 치대고, 문댄다. "아야야~", "어구구~" 신음소리 내지만 시원한 통증이다. 살아오는 동안 녹슬 듯 몸속 구석구석 낀 독소를 시원하게 빼내는 기분이다. 날이 저물면 쟁그랑~ 와인잔 부딪히며 밤늦는 향연을 만끽하였다.
그렇게 누릴 것 다 누리고, 대접받을 것 다 받으면서도 마음 한구석 찜찜함은 그대로다. "그러니까 내가 60살이라는 거네." 깜빡 잊고 있다가 기억을 상기시키듯 혼자 탄식처럼 중얼거리곤 한다. 내 나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다. 순순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거다.
그 찜찜함을 한방에 날려버린다.
그건 바로 며느리가 내민 돈 봉투 덕분이다. '얼마나 두둑하게 넣었을까?' 봉투 속 금액 때문이 아니다. 겉봉투에 쓰인 문구였다. <어머님! 세 번째 스무 살을 축하드려요!>
아 그래, 이거야. 이거. 나는 지금 60살 환갑 노인네가 아니다. 스무 살이야, 스무 살. 세 번째 맞이하는…. 갑자기 멘톨향 사탕을 물었을 때처럼 입안이 환~ 해지며 컬컬한 목구멍까지 뻥! 뚫리는 기분이다.
스무 살. 두 손으로 입 가린 채 "호!호!호!" 소리 내서 웃어야 할 것 같다. 하늘하늘한 시폰 원피스 입고 팔랑팔랑 걸어야 할 것 같다. 목소리도 두 옥타브쯤 올려 "저 여기 있어용~." 약간의 콧소리 섞어 대답해야 하지 않을까?
'60살 환갑'이나 '세 번째 스무 살'이나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다를게 하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꼬여있던 속이 사르르 풀어지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설명은 고사하고 나도 그 이유를 알고 싶은 1인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난 지금이 딱, 좋아.' 노래하듯 말해 오지 않았는가.
20대도 살아봤고, 지금 60대도 살고 있다. 나름 비교해 볼 때 신체 나이를 제외한다면 20대보다 60대인 지금이 훨씬 좋다. 경제적인 면이나 사회적인 지위나 가정의 안정까지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젊은 날에 대한 애틋함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뭐랄까, 첫사랑 같은 기분이랄까.
첫사랑. 그 남자애를 떠나보냈다고 애틋함마저 갖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자, 인정할 건 인정하자.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자.
그래, 나! 60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