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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 쓰는 은정원 Aug 22. 2024

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1부 _09

묻고 싶던 말도, 하고 싶던 말도



아무래도 전쟁이 난 것 같았다.

우리 같은 사람들을 잡아가려고 공화국에서 나온 사람들인가? 총탄 터지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1초의 틈도 없이 폭발음이 이어졌다. 벽이 흔들렸다.

창밖은 빛과 그림자가 번쩍번쩍하고, 매캐한 연기가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구나, 라고 생각했을 때 총탄 터지는 소리의 틈으로 환호성이 들려왔다.

적군을 무찌른 사람들이 기뻐하는 소리란 저런 것일까? 온몸이 전율했다.


그런데 어렴풋이 ‘콰이러’라는 단어가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씬녠-콰이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어머니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우린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살금살금 창문 가까이 다가가 귀를 대고 들어봤다.


씬녠-콰이러! 꽁씨-빠차이! 씬쳰녠-콰이러!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는 ‘새해에 행복해!’, ‘부자 되자!’, ‘새천년 행복하자!’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우리는 조심스레 창문을 열었다.


창문 밖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곳에서는 총탄이 아닌 불꽃이 터지고 있었다.

내가 아는 색상의 이름을 다 말해도 그토록 다채로운 색들의 조합은 표현할 길이 없다.


작은 불씨 하나가 타오르며 하늘에 닿은 후 수십 갈래의 빛으로 활짝 펼쳐졌다.

빛으로 만개하는 그 순간 사그라지기 시작하는 불의 꽃!

분노의 총성이 아닌 빛의 환호!


이 장면 속으로 스며드는 뿌연 연기와 타는 냄새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언제까지고 그 꿈속에 서 있었을 것이다.

얼굴에 그을음 자국을 남기며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흐르자 우리는 콜록콜록 소리를 내며 현실로 돌아왔다.


허기와 공포, 아름다움이 차례로 지나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우리는 한참 웃었다.

그러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우린 맘껏 소리 내어 울었지만 불꽃의 비호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묻고 싶던 말도, 하고 싶던 말도 다시 각자의 가슴 속에 깊게 묻은 채 우린 ‘새천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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