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 수 없는 것들에 휘둘리지 않기
눈 소식이 예고되어 있었지만 생각보다도 더 많은 양의 눈이 쌓였고 지금도 눈이 내리고 있네요.
어제도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날씨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오늘은 시야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눈발이 흩날리고 차가운 기온에 손발이 시립니다.
그렇지만 우리집 강아지를 위해 잠시 공원에 산책을 다녀왔어요.
산책이라고 하기에는 온전히 눈 오는 거리와 하늘 풍경을 즐길 수 없는 저와 다르게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이리저리 눈을 밟고 언제나 그랬듯 여기저기 쏘다니며 즐거워합니다.
문득 왜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고 난리야라며 짜증스러웠던 제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아주 어린 날에는 눈 오는 날을 기다렸던 것 같아요.
흔히 화이트크리스마스라고 부르는 날을 꿈꾸기도 했고 눈이 오면 바깥으로 나가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눈사람도 만들고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에 내 발자국을 찍으며 별 것 아닌 일에도 하하호호 웃기 바빴었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눈은 귀찮고 짜증스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출퇴근길 밀리겠네부터 시작해서, 신발 위로 쌓이는 눈도 짜증스럽고 추위에 덜덜 떨며 직장으로 향하는동안 잔뜩 위축되게 만드는 기분도 싫었어요.
그런 날이면 저 역시도 힘들게 도착한 직장에서 눈길에 다치고 추위에 더 아픈 사람들이 병원으로 늘 밀려들어왔습니다.
운전 하다 다친 사람들도 많았고 길을 가다 넘어져서 고관절이 깨지고 다리가 부러진 사람들도 많았어요.
저 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친구들 걱정에 하루를 온전히 집중 할 수가 없었던 날들도 많았습니다.
학교는 제대로 갔을까, 직장에는 안전하게 도착한 걸까. 집에는 조심히 들어 갔을까.
폭설때문에 일어난 각종 사건사고들이 쏟아지는 뉴스는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유발했어요.
소방관, 경찰관분들을 비롯해서 사회 곳곳에서 고생하시는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고
군대에 있는 동생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추운날 고생만 하는 것 같아서 눈이 반갑게 느껴질리가 없었습니다.
어김없이 이런 날은 병원을 찾은 환자분들과 보호자분들 역시도 짜증스러운 얼굴을 하고 계셨고, 수많은 외래 환자들의 진료와 늘어나는 입원 환자와 수술 케이스는 결국 저의 퇴근까지 매번 늦추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좋게 생각하려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언제나 끝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아... 진짜 짜증난다.
왜 눈까지 와서 안그래도 힘든데 사람 힘들게 난리야.
그냥 세상 모든 것들이 짜증났어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다보니 오늘 다시,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남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그제야 두꺼운 롱패딩을 껴입고 야간일을 시작하러 출근하던 제 뒷모습이 떠올랐고, 그 다음에는 축 늘어진 어깨로 짜증스러운 얼굴로 때로는 우울하고 슬픈 얼굴로 길거리를 뚜벅뚜벅 걸어가던 1년 전 그리고 2년 전, 10년 전 그 옛날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똑같이 내리는 눈이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제 의지와 능력으로 멈추게 할 수도, 더 적게 내리게 할 수도 없겠죠.
하지만 그 바뀌지 않는 날씨라는 상황에 대해서 매번 스트레스 받고 짜증스러워하면서 나의 하루를 망쳐버린 건 과연 하늘에서 내린 눈 때문이었을까요.
이제는 제 마음의 문제였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뭐라도 가져다 붙일 핑계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이든 언제나 신나고 즐거운 얼굴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흙냄새를 맡고 풀냄새를 맡는 강아지를 보면서 세상에 처음 태어난 아이가 자라면서 이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며 즐거워하던 어린 날의 모습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살아가며 마주하는 많은 상황속에서 우리는 왜 지금 이 순간, 행복하지 못할까요. 제가 저에게 묻습니다.
눈이 내리면 내리는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모두 각자의 날씨가 주는 감정과 풍경과 새로움이 있을텐데 왜 늘 햇볕이 따뜻하고 하늘이 맑아야만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눈이 내리면 번거롭고 귀찮은 일 한 두가지는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사실은 열 가지가 생길 수도 있죠. 그렇지만 그러면 뭐 어때요, 조금 번거롭고 귀찮기는 하지만 눈이 와서 좋은 점도 생각해 볼 수 있었을텐데요. 눈이 내려야만 볼 수 있는 하얗고 깨끗한 풍경과 순수했던 동심들은 어느덧 사라지고 기억 저멀리 던져둔채 눈 때문에 짜증나는 상황과 감정에만 집중했던 걸까요.
어쩌면 나의 탓만은 아닐지도 모르죠.
어린이가 눈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하면, 어떠한 이유 설명 없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다 큰 성인이 눈 오는 날을 좋아한다 말하면 어떤가요? 화이트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고 말하고 눈이 와서 신나고 눈이 오니까 즐겁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보통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할까요?
그런 성인을 순수하고 귀엽고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바라봐줄까요?
아니죠. 보통은 아닌 듯합니다.
철없다고 생각하겠죠. 안타깝게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아직도 세상물정을 모른다며,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저러냐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죠.
고생을 안해보고 커서 저러냐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남들은 눈이 와서 불편해죽겠는데 뭐가 그렇게 혼자서 기분이 좋냐고 잔소리를 들을 수도 있어요.
해맑아서 좋겠다, 속 편해서 좋겠다는 비꼬는 소리는 덤이고요.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꿈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큰 꿈을 꾸는 사람에게 가족, 친구, 지인들이 뭐라고 하나요?
보통은 정신차리라고 말하죠. 꿈 같은 소리 하지말라고 이야기하면서요. 아직도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한다면서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하죠. 눈앞에 있는 일, 닥친 일이나 잘하라면서 다그치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그냥 듣고있거나 너의 꿈을 응원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그게 되겠냐며 비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냥 말을 말자며 철부지 어린애로 치부해버리는 사람들도 있을테죠.
눈이든 꿈이든 우리 모두 어린 날에는 원대한 목표와 꿈이 있었고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좋다고 말할 수 있었고, 눈사람 만들러 나가자며 친구에게 연락할 수도 있었고 눈길을 밟으며 만들어지는 뽀드득 소리와 발자국 하나로 천진난만하게 웃고 행복했던 시간들이 분명 있었을테죠.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눈 앞에 내리는 눈에 집중하지 못하고, 즐거워하지 못하고 좋은 점이 아니라 불편한 점, 나쁜 점, 어렵고 힘든 부분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느라 늘 내 마음이 진창이었던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날씨를 내가 바꿀 수 없듯이,
하루하루의 날씨 역시도 나를 바꿀 수 없습니다.
눈이 오든, 비바람이 불든, 폭풍우가 거세든, 태양볕이 내리쬐든
그 어떠한 날씨에도 나의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좋고,
비가 오면 비가 내려서 좋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니까 좋고,
햇볕이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좋고
구름 한 점 없으면 맑은 대로 좋고
그저 그런 날씨라면 그저 그래서 좋다고...
있는 그대로 오늘 이 시간,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하루종일 내 마음이 이리저리 휘둘리며 진창에서 구르는 것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날씨가 어떻든 매일 바깥 세상에 나와 똑같은 길을 산책해도 언제나 즐거워하는 강아지들처럼 살 수 있다면... 하루하루가 지겹고 짜증스러운 일상이 아닌 조금은 설렘으로 기대해볼만한 시간을 보낼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강아지와 그 주인을 잘 살펴보라. 장난에 몰두한 강아지의 기쁨, 언제라도 삶을 마음껏 누리고 축하하려는 강아지의 조건 없는 사랑을 보라. 그리고 이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주인의 마음을 보라. 삶의 시련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생각에 잠긴 그는 의기소침하고 불안하다. 그의 삶에 주어진 오직 하나뿐인 집인 여기에 그는 없다. 그의 삶에 주어진 오직 하나뿐인 시간인 지금에도 그는 없다. 당신은 궁금해지지 않는가? 이런 사람과 살면서도 강아지는 어떻게 기쁨과 온 정신을 잃지 않는지 말이다.
고요함의 지혜 | 에크하르트 톨레
*오늘 하루는 더욱 출퇴근길, 외출 하시는 모든 순간 눈길 조심하시고 안전하고 평안한 하루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