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황실의 꽃 제8장 국혼선포
영덕 15년 봄, 영덕제의 적장자 조효, 즉 황태자 승명의 관례가 있었다. 황제는 열여덟 살이 되어 성인이 된 황태자에게 대리청정을 명했다. 이는 황위 계승 절차의 일환이었다.
황위 후보가 여럿일 경우에는 차기 대권의 향방에 대한 황제의 어심을 알기 쉽지 않을뿐더러, 후계자 교육이라는 본래 목적보다는 신료들과 황위 후보의 충성심을 검증하는 용도로 사용될 때가 많기 때문에 황제의 대리청정 선포는 으레 조정에 커다란 소요를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승명의 경우에는 대리청정 선포가 조용히 매듭지어졌다. 그가 황제의 유일무이한 아들일 뿐만 아니라, 황제의 치세 내내 그를 괴롭히던 종환이 지난해 겨울부터 급격히 악화되어 정무를 처리하는 일 자체가 영덕제에게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대리청정을 하게 된 승명은 간택령 없이 예부에서 정해 올리는 길일에 호번왕의 여식 대연향과 대례를 올릴 것이라고 공표했다. 정식으로 금혼령이 내리고 황실 의전례에 따라 최종 간택 후보까지 오르면 황가와 연이 닿았다고 보기 때문에 설령 황제에게 낙점되지 않는다 하여도 다른 혼처를 구하기 여의치 않았다. 하여 간택령이 있게 되면 참가한 귀족 가문의 체면을 고려하여 최종 간택 후보까지 올랐다가 떨어진 규수들은 모두 황실에서 후궁으로 맞아들이는 것이 황실의 오랜 관습이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답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나 진배없는 황실의 혼사에서 간택령이란 결국 본궁보다 후궁을 결정하는 데 더 큰 의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생략하겠다는 황태자의 발표는 그 역시 내명부의 간소화라는 현황제의 전례를 따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황제의 대리청정 선포와 더불어 급부상한 국혼 문제를 위와 같은 공표로 해결한 황태자는 급한 현안 몇 개를 처리한 뒤 황제를 대신하여 전국 순행을 떠났다.
9장 추억, 그리고 눈물
국혼에 관한 황태자의 성명이 기주성에 전해진 것은 황궁에서 황태자가 국혼을 공표한 후로부터 닷새가 지나서였다. 소식이 닿자 기주성 전체가 경사를 맞이한 것처럼 떠들썩해졌다. 모두가 축제 분위기처럼 들뜬 가운데 정작 당사자인 연향만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연향은 그 연유가 아직 자신이 황태자를 만나지 못한 데에 있다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가을에 성도에 머물 적에도 그녀는 황태자를 끝끝내 만나지 못하였고, 기주에 돌아와서는 올 초에 있었던 황태자의 관례를 첫 만남의 기회로 기약했으나, 입궁을 앞두고 가벼운 낙상 사고가 있어 결국 황태자의 관례에 참석하지 못하였던 까닭이었다.
간택령이 없는 국혼이 자신과 대씨 문중에 대한 황실의 예우 표시라는 점을 연향도 모르지 않았다. 그 조치가 설혹 후궁과 같이 입궐할 그녀의 마음을 헤아린 탓이 아니라 단지 훗날의 황위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결과는 같았기에 연향은 황태자비와 후궁들을 같이 간택하는 황실의 오랜 관습을 무시하면서까지 가문의 위신을 고려해 준 황태자의 배려가 고마웠다.
황태자와의 정혼은 작년 가을 황제의 윤음이 있었을 때부터 각오해 온 바이기에, 국혼에 관한 소식이 전해졌다 하여 새삼스럽게 마음이 무거워질 까닭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긴 한숨이 연향의 입술 새로 흩어졌다.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진 탓일까. 도리어 상념이 짙어지는 기분이었다.
불빛이 장지문에 일렁이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연향은 일어나 황유목 궤를 열었다. 궤 안에는 관대함과 그보다 자그마한 봉황 장식이 섬세하게 장식된 오동나무 죽전함이 놓여있었다. 물건을 궤에 넣고 봉한 이후로 열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두 개의 함은 그녀의 부모인 번왕 내외조차 모르는 연향만의 비밀스러운 보물이었다.
연향은 궤 앞에 몸을 웅숭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주저하는 낯으로 봉인된 궤 안에 소중히 보관해 온 함들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두 개 모두 밖으로 꺼냈다.
관대함을 열자 그 속에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우비였다. 기름을 먹인 감색 비단에 소맷자락과 옷자락 하단에 운학문이 은사로 섬세하게 수놓아진 이 고급스러운 우장은, 작년 가을 연향이 작별의 서한을 아무개에게 전해주고 오라며 보내었던 고공이 연향에게 바친 것이었다.
“공자께서 자애로우시게도 빗발이 굵어 돌아갈 길이 고될 것이라 이르시며 당신의 우장을 벗으시어 소인더러 입고 가라 내려주셨사옵니다. 소인, 분에 넘치는 은혜가 황송한지라 그를 한사코 마다하였으나 공자의 뜻이 강경하시어 더는 거역하기 어려웠던 나이다. 게다가 그분께서 현주 자가께 전하라 명하신 죽전함이 거센 빗줄기에 상할까 근심이 되어 염치 불고하고 귀하신 분의 옷을 입고 말았사오니 부디 처분해 주시옵소서. 이는 미천한 소인이 감히 간직하기 어려울 만치 귀한 물건이오니 자가께 돌려드리옵니다.”
옷자락을 펼치자 울 것 같은 얼굴로 아무개의 우장을 벗어 돌려주었던 하인의 모습이 방금 일처럼 연향의 뇌리에 선하였다. 세월이란 어찌나 부질없는 것인지. 고작 우의 하나 꺼낸 것만으로도 두 계절이나 훌쩍 지난 일들이, 그때 느꼈던 모든 감정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멋대로 약속을 깨뜨린 데다가 무례하게도 아랫것을 보내어 말을 대신 전하였는데도 아무개는 연향이 보낸 하인까지도 두루 챙길 만큼의 자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만약 처지가 바뀌어서 자신이 아무개의 위치에 있었다면 저는 결단코 그처럼 너그럽지는 못했으리라. 연향은 하인에게서 맨 처음 그의 옷을 받아 들었을 때처럼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공자께서 무어라 하셨었느냐.”
“달리 이르시는 말씀은 없었고, 다만 이 함을 전해 올리라 하셨습니다.”
그때에도 목이 메어 간신히 그것만을 물어본 연향에게 하인은 품에 소중히 안고 온 오동나무 죽전 봉황함을 내밀었다. 함에는 제가 그에게 보낸 서찰과 더불어 세 폭의 그림과 글귀가 적힌 한자 남짓의 족자가 들어있었다. 연향은 그날 이후 미안하고 아픈 마음에 다시 펼쳐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던 족자를 꺼내어 펼쳤다.
족자 속 그림에는 그녀와 아무개가 보낸 나흘간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팔각정에서의 만남, 영수전의 석교, 그리고 연지 위의 나룻배. 그림 속의 저는 마냥 해맑고 어여뻤다.
그의 눈에 정녕 자신이 저리도 어여쁘게 비쳤던 것일까. 그림 속에 비친 제 얼굴을 어루만지는 연향의 손길이 잘게 떨렸다.
세필로 섬세하게 그려진 그림을 보며 연향은 그가 이것을 그리느라 얼마나 긴 시간을 보냈을지를 가늠해 보았다. 잠들 수 없는 길고 긴 밤을 베어내어 저와의 시간을 떠올리며 그림 속에 굵고 잔 선을 그려놓고 그 안에 고운 색을 입히며 말없이 견디었을 그가 과연 자신보다 덜한 마음이었을 것인가. 고작 나흘의 만남이었지만 그를 떠올리면 연향은 늘 눈보다 마음이 더 먼저 젖어들곤 하였다.
연향은 그가 그려준 그림을 한 점 한 점 눈으로 어루만지듯 바라본 뒤에 족자의 마지막 화폭으로 시선을 옮기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게 마련이고 헤어짐이 있다면 또 다른 만남이 있을 것이라는 법화경의 구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연향에게 흔히 읽히는 인생무상 같은 의미일 수가 없었다.
외려 그것은 아무런 부담 없이 저를 털고 날아가라는 아무개의 깊은 뜻이었다. 실로 그는 그녀가 그에게 보내었던 서한조차 되돌려주는 것으로 그 깊은 마음을 다시금 드러냈다.
연향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그에게 보내었던 서한을 꺼내었다. 자신의 글 위로 그가 저에게 보내는 전서가 가지런히 겹쳐져 있었다.
“뱃사공은 목적한 곳에 이르면 객을 내려주고 빈 배로 돌아오게 마련이지요. 삶이 때때로 기나긴 항해에 비유되듯 어쩌면 현주와 아무개의 만남은 처음부터 배 위에 오른 객과 사공의 인연과 같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개는 사공의 마음으로 그대를 비울 것이니, 부디 그대의 발길이 닿은 곳에 어여쁜 인연이 그대를 기다리기를.”
헤어짐의 글귀조차 곱고 다정하여 애써 눌러 참아온 눈물이 기어이 쏟아졌다.
연향은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아 간신히 울음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았지만 수려한 서체 위로 굵은 눈물이 굴러 떨어지는 것까지 막지는 못하였다. 아무개의 옷과 그림 족자와 그의 서한 앞에서 연향이 주저앉은 채 차마 소리도 내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