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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럽 Sep 05. 2024

볼 빨간 사추기 (늙으면 어떡하지?)

1.  안녕하셔야 해요

 ‘뭐든 다 때가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릴 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나이 들수록 이 말에 수긍하게 됩니다. 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어린 머리와 어린 마음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나이 들어 살아온 경험이 쌓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이해가 되곤 하거든요.

 가령 쌩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도 어린 시절에는 그림이 예뻐서 멋모르고 읽었다면, 청년기에는 장미꽃의 ‘이유 있는 투정’과 여우가 말하는 ‘길들이기’에 대해 비로소 이해가 되고, 중년이 넘어서 다시 한번 더 읽어봤을 때는, 어린 왕자를 ‘고향별로 돌아가게 해 준 뱀’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지요.  


 이 얘기를 왜 꺼내느냐 하면, 제가 시니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나이가 40대였거든요.  그땐 사실 저한테 시니어들의 얘기는 남의 얘기였습니다. 마음으로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머리로 공부해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원고를 썼는데요.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하나, 어떻게 노후준비를 해야 하나, 이런저런 책을 찾아 읽고 관련 분야의 연사들에게 말씀을 들어도,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뭔가를 자꾸 하라고 하는데 하기가 쉽지도 않고, 책 따로 나 따로인 느낌,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젊지도 늙지도 않은 40-50대의 나이는, 젊은 축에 끼지 못해 위축되게 하는 한편, 완숙함과도 거리가 멀어서, 청소년 때의 사춘기보다 더 마음을 방황하게 했지요. 

 그러다 그 시절을 지내놓고 보니 마치 터널을 빠져나온 것처럼 그 시절에 가장 필요했던 것들, 소중한 것들, 준비해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 그때 내가 썼던 방송원고가 바로 내 얘기였네’, ‘아, 그때는 이렇게 방송 원고를 썼는데 실제 지내보니까 좀 차이가 있네’, 이렇게 비로소 공감하게 되기도 하고, 차이점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니 라디오 시니어 프로그램을 집필한 지 세월이 꽤 흘렀습니다. 그동안 노인 관련 분야를 예습한 덕분에 저는 중년이라는 격동의 사추기(思秋期)를 잘 보내면서 나름 나이를 잘 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참 감사한 일이지요! 아마 제가 시니어프로그램을 하지 않았다면, 시니어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못한 채 불쑥 나이만 들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은 늙지 않을 것처럼 노인폄하 발언을 하다 곤욕을 치른 몇몇 정치인들처럼 말이에요.     

 그동안 라디오 방송에서 했던 얘기들을 이제 좀 더 터놓고 건네려고 합니다. 라디오 방송의 묘미는 진행자와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거지요. 진행자가 하는 얘기는 마치 나한테 하는 얘기인 것 같고,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도 왠지 나를 위한 노래처럼 들립니다. 이런 라디오 방송의 묘미를 살려 나만의 방송 같은 얘기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우선 갱년기를 맞아 시도 때도 없이 붉어진 얼굴로 사춘기보다 더 힘든 사추기를 겪어내면서, ‘늙으면 어떡하지?’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이 글에 눈을 돌리게 된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중년을 넘어서 불안하고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이 드는 건 잘못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부터 가지시면 좋겠어요. 아기가 생후 1년이라는 고비를 넘기면 돌잔치를 하듯이, 중년이라는 고비를 넘어선 것에 대해 먼저 축하부터 해주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중년을 인정해야 중년으로서의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그런 다음 어떻게 해야 잘 늙어가는 것일까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떻게 노후준비를 해야 할지, 촘촘히 그려보시면 좋겠지요. 그러자면 지금까지의 말과 생각, 행동이 많이 달라져야 할 겁니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말로는 쉽지만 많이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드리는 이야기와 함께 하시는 내내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는 ‘늙으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에서 벗어나 ‘늙으니까 행복해!’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우선 ‘볼 빨간 사추기’에 들러주신 여러분, 크게 칭찬합니다!!     


 40+, 50+의 나이를 계절로 표현하면, ‘아직 봄이고 싶지만 이미 여름을 지나 가을을 가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냥 ‘가을을 가고 있는 상태’라고 하면 별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데, 그 앞에 ‘아직 봄이고 싶다’는데 문제가 있지요. 그런데 봄과 가을은 얼핏 닮아 보입니다. 꽃도 똑같이 많이 피는 계절이고, 옷도 하나로 봄가을 통용해서 입을 수 있잖아요. 심지어 춘분과 추분 모두 낮의 길이와 밤의 길이가 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지향점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직 젊다고, 아직 청춘이라고 우기지 말았으면 합니다. 제가 너무 ‘팩트 지적’을 했나요? 하지만 차라리 ‘나는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더 자연스럽고 좋습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건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고, 더구나 때때로 욕심도 불러옵니다. 그리고 그 욕심은 화가 되곤 하지요. 그래서 자연스러운 게 좋습니다. 다만 인생이 가을로 향할수록 ‘안녕’을 챙기시라는 당부를 드립니다.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오프닝은 그 프로그램의 얼굴이라고 얘기합니다. 분량은 짧지만 작가가 진행자의 입을 통해서 청취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따뜻하게, 그리고 프로그램의 성격이 나타나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진행자가 개그맨인 경우에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십분 나타낼 수 있는 인사말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개그맨 신동엽도 ‘안녕하세요?’라는 평범한 인사말 대신 ‘안녕하시렵니까?’라는 좀 이상한 인사말을 유행시키면서 사람들한테 각인되기 시작했지요. 저도 진행자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로 시작하면 너무 상투적이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시대를 지나면서 ‘안녕’에 대한 생각이 확 달라졌습니다. 코로나시대 이전까지는 ‘안녕’이라는 단어를 형식적인 단순한 인사말로 생각했다면, 죽음의 냄새가 곳곳에서 풍기던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면서, ‘안녕’의 의미가 더욱 각별해졌기 때문입니다. 일상이 되어버린 비일상적인 상황에서, 안녕(편안할 安, 편안할 寧), 즉 몸이 건강하고 아무 탈 없이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전 여러분에게 우선 ‘안녕하세요?’라는 첫인사를 건네면서 동시에 ‘안녕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리면서 이 글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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