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크레인
1
연기 무늬가 흐르는 선물가게 문을 열었지. 장바구니를 들고 바질향 샤워젤, 백년초 바스붐, 사해솔트, 해초 리퀴드핸드솝, 사이프러스 아이리무버, 페퍼민트 인헤일러(inhaler), 호호바 두피 클리너를 천천히 담았지. 구름이 오른쪽 진열대를 느슨히 오가고 옅은 에그 무늬가 왼쪽 진열대 위로 뱅글뱅글 돌아가. 꼬마수염하늘소와 하얼빈풍뎅이도 비닐에 넣었지. 움직이는 배경이 나의 걸음을 바꾸고 있어.
그을린 나무 선반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까치발로 한참을 두리번거리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 장바구니가 공중으로 떠올랐지. 솔트와 바스붐, 핸드솝이 펑! 터져버렸어. 컨베이어 벨트는 백년초 가루와 솔트, 해초가 기기묘묘하게 섞여 반짝이는 융단 같아. 비닐에서 나온 풍뎅이가 눈앞에 있고 꼬마수염하늘소가 이마 위로 날아올라
2
맞은편에는 이름 모를 소스들이 있어. 꽃병에 밀봉된 곰소젓갈, 아몬드처럼 쭈글쭈글한 종이로 포장한 메이플시럽, 디스코 타일 통에 들어있는 그린 커리, 카슈미르지방의 우표가 소인된 진저 처트니(Chutney), 기구(Balloon) 모양의 컵에 담긴 클로버 휘핑크림을 알아보았지
3
어깨 위로 전깃줄이 떨어지네. 더듬으니 바이올린 모양의 와플 기계에 닿았어. 초승달 모양의 얼음몰드, 애벌레 모양의 쿠키커터, 솔방울 모양의 파스타 메이커, 선인장 셔벗틀, 사자 타트쉘이 한자리에 있어. 티스푼도 눈에 띄네! 그 끝은 공 자명종 (Gong Timer)이 달려 있어. 흔들어보니 사방에 소리가 울려 퍼져.
4
다음은 육류 구획이야. 아득히 안개가 서린 기슭처럼 냉동고 가득한 하얀 연기 뒤로 생생한 힘줄이 여린 선들로 덩어리에 모아져 있어. 베인 자국 그대로의 살결을 드러내며 빛 아래 물컹하게 있어
5
음료 판매대에 도착했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돔(Dome) 천장의 원형 홀로 쏟아지는 빛이 눈을 찌르는 것 같아. 천장에서 내리는 빛의 천은 공간을 둘에서 하나, 하나에서 둘로, 투명에서 반투명으로 양 끝을 오가면서 결을 만들며 굽이치는 거야. 작은 소리에도 가느다란 광선의 미묘한 파동을 볼 수 있어.
6
어류구획이야. 옥색 얼음 더미가 쌓여있고 커다란 앞치마와 고무장갑의 로봇이 양옆에서 얼음삽으로 얼음을 퍼내고 있어. 청어처럼 보이는 생선이 유리벽에 얼음 범벅의 눈을 붙이고 있네. 군데군데 터진 라임이 파묻혀있어. 손을 쑥 집어넣어 차디찬 청어를 움켜쥐었지. 순간 청어는 거세게 비틀며 솟구쳐 튀어 올라 옆 칸으로 떨어지면서 꼬리를 흔들며 쏜살같이 나아가. 옥색 물이 물방울을 찍어내며 얼음 봉지에서 터져나가지.
7
더 나아가자, Moon 섬이라는 구획에 도착했어. 여기가 행운 크레인이 서 있는 곳이지. 크레인은 리어카 모양인데 무지갯빛 지붕이 건반처럼 빠르게 경계의 색을 지나고 있어. 플라스틱 공이 아래위로 달그락거리고 주위에선 멜론 향이 나.
동전을 넣어 "투데이" 버튼을 꾹 눌렀지. 순간 기계의 집게발이 움직이며 회전하는 공들 중에서 하나를 들어 올렸어. 나는 기대에 차서 반환구에 손을 넣었지. 순간, 모터 소리가 멈추고 주위가 뿌예지네.
플라스틱 공을 열자 발견한 것은 산소마스크였어. 다소 실망한 나는 그 자리에서 원형 껍데기가 가득 쌓일 때까지 행운을 뽑았지. 주로 산소 호흡 전문 기기들이야; 휴대용 산소캔과 , 산소 충전기, 명상용 호흡 유도장치, 흡인기, 부력 재킷, U자형의 비상용 호흡기와 부력 조절용 공기주입기….
난 정말로 행운이 필요했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