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이 되고 날씨가 추워지자, 갑자기 마음이 휑했다. 그를 떠나보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1월 말이면 출국을 해야 했고 나는 그를 보낼 준비를 해야 했다.
당시 한국 상황은 백신 확보가 한발 늦었고, 대만 또한 백신 확보와 자체 개발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시기였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여름방학에도 2차까지 백신을 접종하지 못하면 아예 만날 수 없을 것이고, 만약 백신을 접종한다고 해도 대만이나 한국 그 어디서도 관광비자를 열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와 1년 이상을 못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불안한 말을 굳이 입밖에 내진 않았다. 우리는 백신만 맞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얘기했다.
사실은 그도 현실성이 없다는 얘기라는걸 알고 있지 않았을까?
문득 내가 한국에서 그에게 해준 게 없다고 느껴졌다. 하루도 그를 안 본 날이 없었지만 주로 그가 해주는 요리를 얻어먹고, 집에서 데이트를 하거나 같이 조깅을 하고, 가끔 외식을 할 뿐이었다. 두 달이 채 안 남은 시간 동안 그에게 좋은 걸 해줘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지?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맛있는 거!
일단 그가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실컷 먹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부터 여기저기서 한국음식을 먹여봤지만 간장게장만큼 좋아하는 건 없었다. 질릴 때까지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만 먹여도 앞으로 10번은 먹일 수 있겠는데?
서울에 있는 간장게장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마포의 진미식당으로 원래도 굉장히 유명한 곳이었다. 그는 연애초반부터 이 식당을 좋아했다. 원래는 평일에도 예약을 안 하면 힘들 정도로 붐볐는데 코시국이라 그런지 예약을 안 하고도 게장이 당기는 날 당일에 가서 먹을 수 있었다.
진미식당은 간장게장 외에도 밑반찬도 맛있었다. 그는 폭탄 계란찜이 나오면 매번 숟가락 뒷면으로 계란찜을 탱탱 치면서 흔들리는 게 귀엽지 않냐 물었다.
그가 진미식당에 갈 때마다 음식 외에도 주목했던 게 있었다. 양복차림을 한 직장인 손님들이 점심시간에 반주로 소주를 마시는 걸 보고 신기했나 보다.
"감자야, 한국은 원래 저렇게 점심에 술 먹고 일해도 되는 거야?"
"어? 뭐... 으응..."
"와! 정말 좋다! 대만에서 저러면 잘리는데!"
다른 식당에서 게찜이나 게무침도 먹여보고 새우장도 먹여봤지만 그는 역시 간장게장이 제일 맛있다고 했다. 이쯤 되면 질릴 법도 하다 싶었는데 그는 매번 행복하게 먹었다.
먹기만 한건 아니었다.
등산을 좋아하는 그는 한국에 오기 전, 한국에 오면 서울에 있는 산을 다 다녀보고 싶다고 했다. 집에서 뒹굴대느라 그 다짐이 흐려졌었는데 그가 가기 전에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는 주말마다 산 하나씩 올라보자 제안했다.
등산은 대만에서도 워낙 대중화된 취미라서 그도 어릴 적부터 가족들과 산을 탔다고 한다. 그는 산에 올라 텐트를 치고, 자고 일어나 또 산을 오르는 백패킹을 좋아했는데 서울에선 그 정도의 높은 산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 산을 몇 번 올라보고는 오히려 좋은 코스로 짧게 다녀올 수 있기 때문에 성취감이 좋다고 했다. 대만보다 길이 잘 닦여있어서 산행이 안전하고 편하다고 모든 나라가 이렇게 잘 정리된 등산코스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강의가 한두 개뿐이 없는 날이면 내가 학교에 간 사이에 가서 휘리릭 산을 타고 내려왔다.
매번 관악산 밖에 못 갔던 그를 위해 청계산과 도봉산을 갔다 왔다. 할만하다 싶었다. 어릴 적 설악산을 자주 탔기에 자신만만했었다. 그런데 북한산에 가서 완전히 무너졌다. 밧줄을 붙잡으며 정신줄도 겨우 붙잡았다. 되돌아가는 사람들한테 같이 가자고 하고 싶었다. 그는 거의 네발로 산을 오르는 내 모습이 웃긴 듯 여유롭게 웃었다.
산을 타면서 몇 번이나 아주머니들께 과일을 얻어먹었다. 난 그가 한국인의 정을 경험하고 놀랐겠지 싶었는데 그는 다른 이유로 놀라워 했다.
"감자야! 이거 대만이랑 똑같아."
"응? 뭐가 똑같아?"
"산에서 아주머니들이 자꾸 과일을 먹으라고 주시는 거! 주먹밥도 주시고... 거기다 옷은 왜 그러냐, 신발은 왜 그러냐 뭐라 하시는 것도 똑같잖아?"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다 비슷했다.
산을 타고 너무 좋아하는 그를 보니 진작에 매주 등산을 할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한 번은 그가 떠난다는 것이 실감이 된 날이 있었다.
그가 우리 집에서 대만음식을 하는 날에는 나도 기웃기웃 거리며 좀 배워보고자 했다. 그렇지만 그는 늘 그냥 쉬고 있으라며 대만음식은 자기가 해주면 되는데 왜 배우냐고 했다.
그런데 그가 떠나기 며칠 전, 공심채볶음을 만들다 나를 불렀다.
"감자야 잠깐 와봐!"
"응! 왜?"
"공심채 볶음은 만드는 게 아주 간단하니깐 잠깐 볼래? 이거는 감자도 쉽게 해 먹을 수 있을 거야."
공심채 볶음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요리였는데 그는 대만에서는 너무 평범한 반찬인 공심채를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걸 신기해했었다.
그가 요리하는 걸 보니 정말 간단했다. 줄기를 먼저 익힌 다음 이파리를 넣으라고 강조하는 그를 보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그도 나에게 레시피를 적어달라고 했다. 그는 유튜브를 보며 열심히 한국음식을 해봤는데 웬만한 건 곧잘 했지만 찌개는 내가 끓인 걸 좋아했다.
그는 찌개 중에서 김치찌개를 특별히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저녁으로 김치찌개를 자주 끓였었다. 그는 인터넷에 나와있는 대로 된장도 넣고 새우젓도 넣어봤지만 내가 끓여준 것만큼 진한맛이 안 난다고 궁금해했다.
그렇지만 무슨 못된 마음인지 평생 내 김치찌개만 원하게(?) 하고 싶어서 비법을 알려주지 않고 내가 끓였었다. 하지만 그가 대만에서도 먹고 싶다 하니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비법을 알고 나서 허탈해했다.
김치국물만 들이부으면 된다니!
그외에도 그가 원하는 한국 음식 레시피가 몇 가지 있어, 조그마한 노트에 레시피를 적어주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용돈을 부쳐줄 테니 지금부터 그의 부모님과 형제들 드릴 선물을 미리 준비해 놓으라고 하셨다. 선물을 사러 그와 백화점에 갈 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울적했는데 막상 가서 선물을 고르고 쇼핑하니까 신이 났다.
그와 입을 커플 잠옷도 샀다. "다시 만날 때까지 항상 이걸 입고 자는 거야. 그러다가 대만이든 한국이든 다시 만나는 날 가져오자."
우리는 그런 일 외에는 우리가 헤어져 있는 동안 어떻게 해야 될지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1월 1일에는 산에 올라 같이 떠오르는 해를 보았다. 2021년이 가기 전에 꼭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속으로 빌었다. 하지만 그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요즘 브런치 글을 쓰려고 당시 썼던 일기를 몇 번 정독한다. 일기장에는 그를 보낼 준비를 하며 심란한 내 마음만 잔뜩 쓰여있었다. 하지만 나를 보러 왔다 반년도 안 돼서 다시 떠나야 했던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공심채볶음 레시피는 정말 간단하다.
마늘을 칼로 때려잡듯 뭉갠다음에 듬성듬성 다진다.
공심채는 적당한 길이로 잘라 줄기 부분과 이파리를 따로 모아둔다.
기름에 마늘을 튀기듯이 볶아서 마늘 향을 내고 공심채의 줄기 부분만 먼저 볶는다. 소금 간을 한 뒤 피시소스(혹은 액젓), 굴소스를 소량 넣고 볶다가(많이 넣으면 너무 짜다.) 이파리를 넣고 분쇄 페페론치노를 뿌린다.
이파리는 넣고 30초만 볶은 후 바로 불을 끈다.
아주 간단한데 정말 맛있다. 시간이 좀 지나면 공심채에서 물이 나오는데 그 양념에 밥을 비벼 먹어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