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려고 빌었던 소원이 아님을 몰라주는 이름모를 신
어린 시절,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나는 나쁜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매일 하굣길에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따끔한 벌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 그때의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멋진 아이라고 말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도의 결과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게 된다. 지금 나는, 이름 모를 신이 그 약속을 너무 성실하게 지키고 있다고 느낀다. 매번 사소한 실수에도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듯한 상황들이 내 일상 속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그런 약속이 이렇게 지켜질 줄 몰랐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그때 그런 기도를 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왜 하필 그런 소원을 빌었을까? 차라리 멋진 어른이 되게 해달라고, 실수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더라면 지금의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불행들이 그 기도의 결과라고 느껴지면서, 나는 종종 그 순수했던 마음을 원망하게 된다. 어린 마음에 간절하게 빌었던 기도가 지금 내 삶에 이렇게까지 영향을 미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그때의 나를 비난해도 될까? 어린아이였던 나는 그저 나쁜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랐을 뿐인데.
돌이켜보면, 그때의 마음이 참으로 절실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절실함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라면, 나는 그 마음을 저주해도 되는 걸까?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들 하지만, 모든 약속이 다 지켜질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렇게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약속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내가 어렸을 때 했던 그 약속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 약속이 지금 나에게 이렇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때의 나 자신이 너무나도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벌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멋진 어른으로 자라고 싶은 마음, 신은 유도리가 없어서 약속의 의미를 모르고 성실히 지켜주는걸까, 바뻐서 나를 이끌어주지 못하는걸까 싶은 9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