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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장. 10개월 막바지 교수님의 위로에 위안을 얻다.

by 뚜기맘



화요일은 담당 교수님의 외래진료가 있는 날이다. 세브란스병원으로 전원후 나의 산부인과 진료는 늘 예약이 화요일에 잡혔다. 전날 피부과 협진 진료를 다녀온 후 다음 날 또다시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고 나의 발걸음은 4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은 간호 선생님과 동행 없이 혼자 병원을 찾았다.


요 며칠 정말 뚜기 출산 문제 말고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받는 일들이 많아서 월요일 일탈을 감행했다. 막달의 임산부긴 했지만 막달이 대수냐 싶었다. 일부러 병원 근처에 숙소를 잡고 있었다. 전날 내내 복잡한 심경과 착잡한 마음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병원에 겨우 갔다.


이번 검진 때는 태아 안녕 검사 태동 검사만 하고 교수님 진료만 보면 되는 거라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태동 검사도 그리고 교수님 진료까지도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두 번 겪는 일 아니라 그러려니 하면서 기다렸다. 10시 30분 진료여서 30분 전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내가 10시 조금 늦게 도착한 것도 한몫했으니까.


간호 선생님 없이도 키오스크에서 도착 확인 먼저 하고 원무 진료비 수납장에 가서 수납하고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고 혈압을 측정했다. 그리고 태아 안녕 검사실 앞 문짝에 나와있는 내 이름에 도착했다는 브이 표시를 남기고 노크를 하고 앞에 앉아서 대기를 했다. 평소에는 바로 들어갔는데 이 날따라 태동 검사를 하는 산모들이 꽤 되었다.


멀뚱멀뚱 앉아 한숨을 푹푹 내쉬며 기다리고 있는데 태아검사실 간호사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한 20분 정도 본 것 같다.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잘 움직여주고 있었다. 아침을 안 먹고 갔던 터라 잘 움직이는지 자고 있는 건 아닐는지 걱정스럽긴 했지만 다행히 움직임도 잘 느껴지고 뭉침이 느껴지긴 했으나 비교적 괜찮았다.


태동 검사를 마치고 교수님 진료방 앞에 앉아서 한참을 대기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었다. 너무 심난하고 생각이 많았기에 그 어떤 소리도 그 어떤 행동도 내겐 무감각했다. 그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그냥 눈에서 눈물만 흘러내리고 있었을 뿐. 전날 밤에 생각했던 것을 교수님께 이야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기 아빠가 생물학적으로 아기 아빠가 맞으니까 표현을 아기 아빠로 한다. 남자친구가 그렇게 화재사고로 3월에 하늘나라로 갔을 때도 19주 차쯤에 뚜기의 건강 상태와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을 힘든 시기 때도 위기가 있긴 했지만 잘 넘어왔던 시기가 있었다. 근데 요새 이런 힘든 위기를 능가할 만큼에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겼다.


미혼모 시설서 지내면서 관계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예상치 못하게 커져버린 것. 개인사 힘든 거야 사정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지내는 동안에는 서로 눈치 안 보고 마음이라도 편하게 지내야 하는 게 아닌가?

눈치가 눈치를 낳고 눈치가 눈덩이처럼 불어버려 너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시설을 나와야 하나? 병원을 옮길 수가 있는지에 대해 교수님께 여쭤볼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다. 밤새.


현실적으로 그냥 놓고 봤을 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 뚜기가 건강한 아기고 건강한 상태고 안전하게 출산이 가능한 상태라면 지금 지내는 곳에서 굳이 출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시설에서 출산을 하고 그 이후를 생각해도 된다.


그러나 그럴 상황이 아니었던 것. 지금 상황에 다른 병원이 받아준다는 보장도 할 수가 없었으려니와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진짜 출산을 얼마 앞두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그리고 이런 문제를 나 단독으로 처리할 수도 없었다. 그동안 병원 예약하며 같이 전전긍긍해 주시며 맘 졸여가며 병원 동행해 준 간호 선생님에 대한 예의도 그리고 지금까지 지내온 시설에 대한 올바른 행동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내 개인적인 마음은 그렇게 생각을 할 정도로 불편하고 언짢고 힘들었다. 이게 나를 위한 건지 아니면 뚜기를 위한 선택이 맞는 것인지 몇 번이고 생각을 하고 생각을 되풀이했다.


머릿속은 지끈지끈 아파지고 눈물은 새어 나왔다. 그 사이 진료 순번이 다가오고 있었다. 감정을 추슬러야 했었다. 겨우 추스르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교수님.


처음에 초진 왔을 때만 해도 첫인상이 내게 좋지 않으셨던 워낙 차갑다고만 느꼈던 교수님이라 느끼고 생각했는데 두 번 세 번 뵈니까 차가운 이미지가 신뢰가 가는 믿음이 가는 이미지로 바꿔져 있었다. 믿음이 가고 강단이 있으신 곧으신 분 어떤 말이든 신뢰할 수 있는 분.


"오늘은 혼자 왔네요?'"라는 교수님 물음에 짧고 간결하게 "네"라고 답해드렸다. 주야장천 긴 말들은 별로 안 좋아하시는 분이시니까. 어제 검사받고 간 피부과 진료에 대해서도 괜찮다고 전달받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출산일에 맞춰서 소아과와 신생아과에 수술 날짜 관련해서 일정 컨펌 다 끝낸 상황이라고도 말씀해 주셨다. 이제 진짜 출산만 잘 준비하면 될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오늘 본 진료가 출산 전 마지막 진료인지 아니면 한 번 더 진료가 있는지에 대해 여쭤봤더니 다음 주에 출산 전에 마지막으로 아기 몸무게랑 초음파 한번 보자고 해주셨다. 그때는 초음파 그냥 봐주시겠다는 말씀과 함께. 그 말을 듣는데 눈시울이 내가 붉어졌나 보다. 교수님이 왜 우냐고 물어보셨다.


"무슨 일 있어요?"라고."그냥 수술 날짜도 다가오고 또... 출산하고 나면 아기 상태도 걱정이 되고.. 그래서.." 그냥 말을 얼버무렸다. 더 이야기했다간 오열 직전까지 갈 것 같아서. 심리적으로 너무 스트레스받고 있던 터라 빨리 그 자릴 벗어나야 할 것만 같았다.


"수술은 다 잘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기 걱정 또한 지금은 하지 마시고 옆으로 밀어두시고 엄마 컨디션부터 아직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때 일은 그때 가서 같이 생각하고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지금은 생각 자체를 하지 맙시다."


강단 있는 교수님 목소리에 더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몇 주 전 진료 때만 해도 웃으면서 씩씩한 모습을 보여드렸던 내 모습이 스치듯 생각이 났다. "네 알겠습니다. " 하고 대답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다음 진료에 대해 안내해 주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알겠다고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고 진료실을 나섰다. 주책맞은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아서 맘이 쓰였다.


머릿속에서 계속 고민하던 병원 전원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다. 결국. 간호사님이 다음 진료 잡아준 종이를 들고 산부인과를 빠져나와 멀찌감치 있는 대기 의자에 앉아 잠시 동안 멍 때리며 앉아있었다.


일단 병원에는 왔고 뚜기 문제는 걱정이 앞서긴 하지만 교수님 말씀 따나 내가 지금 와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그 어디에도 아무것도 없다. 그냥 교수님들 믿고 맡기는 거 밖에는. 내 손을 이미 떠난 일이라. 그 부분은 담담히 견딜만한데..


심리적으로 시설에서 지내면서 받는 이 스트레스는 어찌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가 않는 게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내가 이런 스트레스까지 받아야 하나 싶고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싶었다.


오갈 데 없는 내 미혼모 처지도 참 답답한데 이런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받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자꾸만 작아지는 내 모습에 너무 화가 나고 싫었다. 그리고 이런 부적절한 내 감정이 오롯이 뚜기한테 전달되는 것도 무섭기만 했다.


이런 복잡한 심경 속에 뚜기만 놓고 봤을 때 교수님이 오늘 진료 대해 주셨던 말씀은 이때껏 교수님 진료를 봤던 내내 가장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말씀을 해주셨다. 교수님께 정말 감사했다 오늘의 진료는 잊지 못할 듯.


아직 나는 엄마가 되기엔 부족함이 큰가 보다. 아직도 내 힘든 마음 때문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있으니까. 아직 철든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보다. 굉장히 나름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뚜기가 태어나면 나는 우리 뚜기한테 어떤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이러는지... 두렵기만 하다. 나약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는데.. 무너지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내가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다. 무수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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