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 권장 프로젝트」 마음의 장바구니 - 24
어느 날, 브런치북의 두 세계관을 합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치 권장 프로젝트」 '마음의 장바구니' 속 도서 선정을 「삶의 레시피」 '쓸데없지만 쓸모 있는'의 글과 연결 지어서 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삶의 레시피」 열네 번째 글 '좋은 질문을 나누는 사이'와 함께 책 이야기를 펼쳐볼까 합니다.
『오틸라와 해골』은 속아선 산 기분이 드는 책이다.
책 소개에 혹 해서 샀는데.. 사고 보니 내가 기대했던 바와는 거리가 있는 책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에게 뭘 기대했을까?
내가 기대한 것은 스릴러였다.
'마음의 장바구니' 여섯 번째 책으로 소개된 『늑대와 오리와 생쥐』에서 그림을 그린 존 클라센이 그림과 함께 글까지 맡았는데 장르가 스릴러라고 한다.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스릴러 장르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존 클라센의 그림을 생각하면 그보다 잘 어울릴 순 없었기에 조금의 머뭇거림 없이 나의 구매욕에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그림책에서 스릴러를 어떻게 소화할지가 너무나 궁금했던 것이다.
그렇게 마주한 책은.. 두둥!
프롤로그와 오프닝 타이틀부터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림책이라고 해도 분명 스릴러를 표방하고 나선 책이건만, 도입부 후로 스릴러는..
사 라 져.. 버 렸 다....ㅠ
'오틸라'라는 이름 외에는 모든 것이 미스터리한 이 존재는 한밤 중에 숲 속을 급히 뛰어간다.
나도 같이 뛰기 시작했다.
이때 어디선가 오틸라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사람 목소리인지 바람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분위기는 충분히 무르익었다.
설상가상 오틸라는 바닥의 나뭇가지에 걸려 눈밭에 넘어진다. "눈과 어둠과 막막한 고요 속"에서 결국 오틸라는 와락 울음을 터뜨린다. 나도 같이 먹먹해졌다.
'자, 이제 이 미스터리한 서사를 풀어내줘!'
나는 잔뜩 기대했다.
그런데, 오틸라는 울음을 쏟아낸 후 엄청나게 씩씩해졌고 그와 맞물려 이야기의 톤은 한없이 시들해진다.
흠.. 뭔가 속은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이 자리를 성토의 장으로 만들 생각은 아니다. 내가 기대한 것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란 말씀!
『오틸라와 해골』을 읽다 보면 질문이 참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목에 나와있듯이 오틸라와 해골의 만남이 내용의 기본 뼈대인데, 둘의 대화 중 상당 부분이 질문과 대답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해골이 사는 낯선 장소에 들어선 만큼 오틸라는 열심히 질문을 건넨다. 둘의 적당한 거리감과 적당한 온기에서 특유의 분위기가 맴돈다. 그리고 그 지점이 미스터리함을 표방하는 일련의 사건들과 평행을 달리며 독특한 질감을 선사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괜찮다면 이 집에서 주무세요."
해골이 말했어.
"정말 고마워요." 오틸라가 말했어.
"그런데 말씀드릴 게 있어요."
해골의 말에 오틸라가 찻잔을 내려놓았어.
"이 집에는 뼈다귀가 찾아와요.
머리가 없고 몸통만 있는 뼈다귀예요.
저벅저벅 쏘다니며 나를 찾아요.
그러다 날 보면 잡으려고 쫓아와요."
"잡힌 적이 있나요?" 오틸라가 물었어.
"아니요." 해골이 조용히 대답했어.
"그런데 이제 전 많이 느려졌어요."
오틸라가 해골을 찬찬히 바라보았어.
"뼈다귀에게 잡히기 싫은가 봐요."
"그럼요. 당연하지요." 해골이 속삭였어.
사뭇 진지하지만 뭔가 싱거운 대화가 열심히 오고 간다.
몸통이 없는 해골이 몸통만 있는 뼈다귀 이야기를 저렇게 하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나는 이 둘의 주고받음이 좋다.
서로 눈(?)을 맞추고 예의롭게 대화하는 모습이 좋다.
각자의 비밀을 공유하고 이해하고 도와주고 뜻밖의 질문도 나누며 연대하는 모습이 좋다.
비록 스릴러와 미스터리를 놓쳤지만,
뜻밖의 '관계 맺음'과 질문의 '주고받음'을 만날 수 있었으니 이 책을 구입한 게 그리 밑진 일만은 아닌 거 같다..ㅎㅎ
Book. 『오틸라와 해골』, 존 클라센 그림 · 글 / 서남희 옮김, 시공주니어, 2023.
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