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말만 많이 나열했지만, 이제라도 본론으로 직입하자면, 나는 그분의 여섯 번째 자녀인데(형님과 나 사이에는 네 명의 누님이 있다), 6.25 전쟁이 터지자 고향으로 피난 나왔다가 그의 나이 마흔이 넘어 만든 당시로서는 늦둥이다.
그분은 식구들을 모두 고향(하동)에 남겨두고, 장남만 데리고 부산으로 나가 사시다가 전쟁을 피해 비교적 안전한 곳이라고 피난 나왔는데, 부산은 끝까지 무사했지만 하동은 적군에게 점령당해서 갖은 고초를 겪었다니 <오졸정센>식의 오두방정과 판단착오가 빚은 실수였다. (그런 연유로 잉태되었던 내가 어쩌면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큰 실수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었다.)
그가 부산으로 따로 나가서 살게 된 건 장남의 교육 때문이었다는데 요즘의 유행과는 방향이 반대인 이상한 기러기아빠였던 셈이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부터 오랜 기간을 가족을 떠나 밖으로 나돌곤 했던 그의 과거를 추정해 보려면 바람기부터 의심해야 하지만, 비슷한 간격으로 귀가하여 자녀들을 생산했고, 나에게 배다른 형제가 하나도 없는 걸로 봐서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 완전범죄를 하셨거나 그런 문제는 비교적 담백하셨든지 둘 중에 하나였을 게다.
남자들이 바람을 피우는 걸 흉으로 여기거나 비난받을 일이 아니던 시절이었고, 자랑할 일은 못되지만 은연중에는 능력으로 치부하고 과시하던 풍조까지 있던 때라 숨기고 능청을 떨었을 확률은 아주 낮다. (당신의 여섯 명의 남자형제 중에서 드러내놓고 축첩을 하지 않았던 분은 당신 혼자밖에 없었던 걸 보더라도 특별히 흠잡을 사건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아내(나의 모친)에게서 그 연유를 찾을 수도 있겠다. 육십 년 가까이 해로하신 그녀에게 살갑게 구는 모습을 본 적은 드물지만 자주 다투지도 않았고, ‘조강지처 박대하는 놈 잘 되는 것 못 봤다’고 되뇌시는 걸 내 귀로도 여러 번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할 줄 아는 게 드물어 대부분의 일에는 무능력자에 가까웠고 병약해서 항상 보호본능을 느끼게 하는 분이셨지만, 외모로만 보면 상당한 미인이셨던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런 그녀에게 특이했던 점은 남편만이 당신의 전부였다는 것이다. 내가 당신이었대도 그런 아내를 쉽게 배반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