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삶은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다.
희망을 친구로 삼을지,
아니면 실망을 친구로 삼을지,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 J. 위트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하는 말의 참된 의미는
인간이 각자의 삶에서 마주하는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스스로 해석하고 선택할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생의 모든 문제는 태도의 문제이고, 인생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을 믿는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요셉을 보자.
그는 아버지의 편애(偏愛) 때문에 배다른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형제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뻔했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낯선 땅에 노예로 팔려갔다. 형제간에 일어난 비극은 요셉이 아직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하지만 어린 요셉은 노예로 팔려간 후에도 삶을 포기하기 않고 성실하게 살았다. 그래서 주인의 인정을 받고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억울한 누명을 쓰고 또다시 기약 없는 옥살이를 하게 된다.
요셉의 삶은 그야말로 원망과 증오로 얼룩질 만큼 억울한 일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요셉은 그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희망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애굽땅의 총리가 되어 형제들을 재회하게 되었을 때 이렇게 고백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세기 45:5)
나는 요셉에게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운다.
그의 삶에 이미 일어났던 일, 형제들에게 버림받고 노예로 팔려갔다는 그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 사건을 바라보는 요셉의 '해석'이 달라졌다. 요셉은 그 사건을 더 이상 형제들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로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신의 섭리를 통한 필연적 운명이었음을 받아들인다.
요셉은 복수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는 이집트의 전권을 쥔 총리였기에 형제들을 향해 얼마든지 복수의 칼을 들이댈 수도 있었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복수가 아니라 용서였다. 요셉은 아마도 자기 자신을 위해 용서라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낯선 타지에서 형제에게 버림받은 총리로 사는 것보다는, 비록 나를 죽이려 했던 형들이지만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서라도 다시 형제들과 더불어 지내는 삶이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인생은 이와 같이,
어떻게 살아갈지 그리고 내가 어떤 존재가 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나에게 신앙은 내 삶의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선택할 이유가 된다.
내가 신을 믿는 이유는 선한 의지를 가진 초월자가 내 삶을 아름답게 인도해 주기를 끝까지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앙생활을 했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수 없이 많은 예배와 찬양과 기도를 신께 드렸지만
내 인생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일보다는 그렇지 못한 일이 더 많다.
오히려 정말 신이 있다면 내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원망할 만한 일들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신앙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이 선하신 신의 섭리 가운데 있는 일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곧, 그것이 나의 바람과 선택이기 때문이다.
힘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나를 강하게 만들 시련을 주셨어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내게 풀어야 할 문제를 주었어요.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극복해야 할 두려움을 주셨어요.
사랑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상처받고 연약한 사람들을 보내셨어요.
내 모든 기도는 응답되었어요.
어떤 영화의 한 장면 중에 이런 대사가 있다.
유튜브 쇼츠를 보다가 우연히 마주친 문장이 가슴을 울려서 따로 기록을 해두었다.
그렇다. 지금 나에게는 선택의 문제가 주어져있다.
왜 이런 시련을 주었느냐고 원망할 것인지, 아니면 이 시련을 통해 더 단단해질 내일을 희망할 것인지 말이다.
지난 결혼생활을 실패로 규정하고 거기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 시간을 배움으로 삼고 지난 경험을 토대로 더 성숙한 만남과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
떠나간 사람을 원망하고 남겨진 자신을 초라해 할 수도 있겠지만,
함께했던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순간만을 추억하고 내가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다만 이제는 홀로 남겨진 것을 슬퍼하기보다,
온전한 자유를 얻었다는 사실에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절망이 아닌 희망을, 실망이 아닌 소망을
친구로 삼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