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뿌리

#13

by 나의해방일지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뿌리에는
두려움이 있다.


나는 한 때 스스로 용감하고 배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때로는 사람들이 침묵하는 불의에 맞서 싸우기도 했고 남들이 감히 엄두를 내지 않은 길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혼을 겪고 난 후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나는 인생의 많은 순간 두려움 때문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불의에 맞서 싸울 용기는 있었는지 몰라도, 정작 내 운명에 맞설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왜 자녀를 낳지 못했나.


7년이 넘는 결혼 생활 동안, 나는 아이를 갖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갖지 않았다. 아내가 임신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상태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단호하게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당시에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둘이 먹고사는 것도 빠듯한데, 내 앞가림하기에도 벅찬데, 아이를 낳는 것은 사치라고 여겼다. 적어도 어느 정도 아이를 양육할 준비가 되었을 때 아이를 낳는 것이 태어날 아이를 위한 부모로서의 책임과 도리라고 생각했고 그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믿었다.


주위 어른들이 종종 내게 말했다. "아이는 각자 자기 밥그릇은 쥐고 태어난다." 모든 인생에 각자 타고난 복이나 재능이 있어, 결국은 자신만의 몫을 찾아 살게 되니 미래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제는 조금 수긍이 되는데 과거의 나는 이 말이 무책임한 어른들의 합리화라고 생각했다.


'하, 자신들이 그렇게 책임감 없이 육아를 했다는 말 아닌가?'


좋게 생각할 수도 있는 말에 반항심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감정이 들었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학창 시절 결핍이 많았기 때문이고 그런 삶의 경험을 통해 두려움을 내면화했던 탓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 부모의 갈등과 이혼을 겪었고,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래서 사는 게 힘들고 괴롭게 느껴지는 순간이 많았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다. 미래에 태어날 아이가 나와 같은 아픔과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랐고, 그 아이가 나를 원망하게 되는 상황을 겪게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다를 수도 있다. 비록 남들보다 조금 부족한 형편이라고 해도, 아이에게 진심 어린 사랑을 쏟고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아이는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만약 내가 두려워하기보다, 그리고 최악을 생각하기보다 희망을 갖고 아이와 함께 하는 더 행복한 삶을 꿈꿨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걱정이 많다는 것은, 인생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또 물질적인 것과 돈에 집착하는 것은 돈이 살아가면서 겪게 될 두려움을 상쇄시켜 줄 거라고 믿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그토록 두려워했던 일도 지나고 보면 별게 아니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삶의 태도는 인생의 파도에 그저 몸을 맡기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요일 4:18



두려움이야 말로 나의 삶의 가장 큰 적이며 최후의 적이다.



나는 지금 두려움과 씨름하고 있다. 나를 사로잡고 있던 두려움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이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도리는 없지만, 적어도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치거나 회피하지 않을 수는 있다. 이제는 두려움에 맞서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다. 두려움은 내 삶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지만 그걸 뛰어넘은 후에는 새로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질 것이다. 지금 당장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방법은 단 하나, 두려워하지 말고, 배우고 도전하고 실천해서 원하는 삶을 사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오직 나만이 나의 구원자가 될 수 있다.


운명애(運命愛)라는 말이 있다. 라틴어 '아모르파티(Amor Fati)'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 말은 '운명에 대한 사랑'으로, 니체의 철학에서 인생의 기쁨과 고통을 그 자체로 수용하고 포용하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그동안 나는 내 운명을 사랑하지 못했다.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나는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삶에 주어진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싶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연기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진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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