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내며

#10

by 나의해방일지

지난 4박 5일의 제주도 여름휴가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기에 그 순간의 경험을 글로 남겨보려 한다.


여행의 마지막 저녁이 되면,

나는 바닷가에서 떨어지는 해를 보리라 다짐했다.


수평선 위로 가라앉는 태양과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면서

아내에 대한 감정과 지난 결혼생활에 대한 회환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주 엉알해안을 따라 솟아오른 수월봉에 올라 탁-트인 곳에 자리를 잡은 나는

제주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해를 오랫동안 그저 바라보았다.


1~2시간 가량이 지나자 바다가 해를 삼켰고 하늘도 곧 캄캄해졌다.

나와 같이 일몰을 감상하러 찾아온 여행객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그 곳에는 오직 나와 적막한 바다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이 시간을 위해 준비한 시를 한 편 읊기 시작했다.

핸드폰 메모장에 미리 적어둔 그 시는,

이형기의 "낙화", 그리고 조지훈의 "사모"의 일부를 내 마음대로 이어붙힌 것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건내는 작은 위로와 격려로써

그 시를 천천히 그리고 계속 반복하여 읽었다.

그리고 이내 메모장을 보지 않고도 시를 외워서 읊조릴 수 있게 되자,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이제는 가야할 때.


한 잔은 떠나간 너를 위하여

한 잔은 너와 나의 영원했던 사랑을 위하여


한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예비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별이 빛나는 바닷가, 반쪽짜리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던 그곳은

아무도 찾지 않는 침묵과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를 닮은듯한 외로운 풍경 속에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놓아주고, 또 흘려보냈다.


그 시간은 내게

단순한 이별이나 마음의 정리가 아니라,

삶의 소중했던 시간과 기억에 대한 하나의 경건한 의식이었다.

그 순간 두 눈에서 뜨겁게 흘러내린 눈물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견뎌온 시간들에 대한 위로였고

여전히 아름답고 존엄한 나 자신과 앞으로의 살아갈 삶에 대한 격려와 축복이었다.


비록 그 자리에 술 잔이 올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떠너간 너와 우리의 사랑 그리고 남겨진 나를 향하여

이해와 놓아줌, 추억과 감사, 자기 연민, 그리고 희망과 믿음을 담담히 선언하였다.

나의 입술을 통해 울려퍼진 그 언어들은 단지 고요한 낭독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준비를 위한 거룩한 예배로써 남았다.


그 날 나는,

인생이라는 고요한 바다 앞에 서 있있고,

내 삶에 주어진 그 모든 것을 받아드리고 또 그대로 흘려보냈다.

지난 날의 나를 온전히 보내주었고,

지금 여기의 나를 품에 안으며,

앞으로 만들어갈 나의 시간을 하나님께 맡겼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