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묵상

돌싱에세이 : 스물네 번째

by 나의해방일지

대림절이란 기다릴 대(待) 자에 임할 임(臨) 자를 써서 구원자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란 뜻이다. 기독교엔 매년마다 지키는 절기라는게 있는데, 가장 유명한 절기는 전 지구인의 축제로 자리 잡은 성탄(聖誕)절이다. 대림절은 바로 그 성탄을 앞두고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며' 보내는 4주간의 기간을 말한다.


나는 부활절보다는 성탄절을 더 좋아하고, 부활절을 앞두고 지내는 사순절 기간보다,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 기간을 더 좋아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크리스마스 시즌의 따듯하고 풍성한 연말의 느낌 때문만은 아니다. '기다림'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대체로 기다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빨리빨리'의 민족, 한국사회에선 모든 것이 빨라야 하고, 최대한 빨리 즉각적인 결과가 나와야 한다. 빨리 결과가 나와야만 그것을 능력이 있고, 쓸모가 있다고 인정해 주기 때문에 기다린다는 것은 때로 무능력해 보이고, 쓸모없이 느껴지며,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말하자면 우리는 '기다림'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말로, '기다림'은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일일까?


인생에는 반드시 기다림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씨를 뿌리는 농부를 생각해 보자. 농부가 씨를 땅에 심은 뒤에 싹이 트고 열매가 맺을 때까지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면, 농사를 망치게 될 것이다.


최근에 동생이 임신을 했다. 어느날은 산부인과 진료를 받고 오더니 자궁경부 길이가 짧아져서 조산의 위험이 있다는게 아닌가. 소식을 듣고 온 가족이 비상이 걸려서 동생더러 꼼짝 말고 누워만 있으라고 했던 일이 있었다.


만약 부모가 뱃속에 아이를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엄마 뱃속에 있는 아이를 빨리 출산하려고 하면, 아이도 위험하고 산모도 위험해진다. 비록 몸이 무겁고, 허리가 아프고, 밤새 잠을 설치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가 충분히 엄마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때까지 부모는 그 시간을 기꺼이 참고 견딘다. 그것이 바로 기다림의 미학이다.




1. 기다림은 '진실함'의 증거다.


당신은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본 적이 있는가?


여기 연인을 기다리는 한 사람이 있다. 약속한 시간이 오래 지나도 만나기로 한 연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은 핸드폰과 카톡이 있으니 당장 연락을 해보겠지만, 그게 없던 시절엔? 혹시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발을 동동 구르고 걱정을 하며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할 것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 사람이 나타나 길이 엇갈릴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누군가를 1시간, 2시간... 혹은 그 이상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단지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진실한 마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반드시 약속한 장소에 나타날 거야. 왜냐하면 날 사랑하니까.'


기다리는 대상이 무엇이든, 그에 대한 신념과 믿음이 확고하다면 끝까지 그것을 기다릴 수 있다. 믿음이 없다면 기다림은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참고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진실하다는 뜻이다. 인생에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고귀한 일이다. 아무것도 기다릴 것이 없는 삶보다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릴 수 있는 삶이 더 아름답다.



2. 기다림은 '성숙'의 자리다.


확고한 신념과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다림은 대체로 지루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결국 참아내는 것이고, 인내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나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표면적으로는 고통스럽지만 결과적으로 훈련과 성숙을 낳는다.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안에 조급함이 드러나게 된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하지만 그런 불평이 생겨날 때, 그 기다림 가운데 비로소 인내를 배운다. 그렇게 인내를 훈련하다 보면 결국엔 겸손의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다. '세상에는 아무리 간절히 원한다고 해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도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조급함 대신에 여유로움을 그리고 교만함 마음 대신에 나를 낮추는 겸손을 낳는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은 오래 참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성경은 사랑이 '오래 참는 것'이라 가르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고,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트로트 노래 제목 중에 이런 노래가 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그렇다. 사랑은 원래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다. 기다림은 인간으로 하여금 진정한 사랑을 배우도록 하고 그 결과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



3. 기다림은 '기적'을 만든다.


여기서 말하는 기적은 종교적인 신비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이 삶에서 경험하게 되는 '초월'이다. 인간은 언제 삶에서 '초월'을 경험하게 될까?

초월이란 '나를 뛰어넘는 것' 또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변화'를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변화를 원한다. 그리고 늘 도전과 성취를 꿈꾼다. 하지만 변화는 오직 변하고자 하는 사람의 것이다. 변화와 성취는 결코 공짜로 주어지는 법이 없다.


기다림이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두 가지, 진실함과 인내는 결국 우리 삶에 '성취'라는 열매를 가져온다. 앞서 얘기한 농부의 씨앗처럼, 또 어머니 뱃속에 태아처럼, 인간의 삶에는 진실함의 토양 위에 인내라는 씨앗이 뿌리내려야만 열매 맺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기다릴 수 있는 사람만이, 다시 말해 진실한 마음으로 끝까지 참고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나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으며 자신의 운명과 맞서 싸울 수 있다. 변화는 반드시 고통스럽다. 또한 결코 한 번에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길고 지루하며 고통스러운 인고의 시간을 끝끝내 버틸 수 있는 사람만이 결국 그 마지막에 '성취'의 열매를 맛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기다림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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