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길의 끝에 소시지가 있다

독일 소도시 여행 - 레겐스부르크

by 유상현
슈타이네른다리01.jpg

고대 로마제국 시절에 만들어진 도시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신성로마제국 시기에는 한동안 제국의회가 고정적으로 개최되어 어떤 의미에서 수도 역할을 하기도 했던 유서 깊은 도시이며, 지금도 레겐스부르크에는 그 오랜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다.


도나우강이 한적하게 흐르는 레겐스부르크에서 고대 로마와 신성로마제국의 흔적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그 길의 끝에 부어스트(소시지)가 있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하실 분들에게 레겐스부르크의 매력을 보여주는 다섯 가지 장면으로 설명해드린다.


Scene 1. 로마 유적

레겐스부르크는 고대 로마의 군사 병영 카스트라 레지나(Castra Regina)가 있던 곳, 즉 큰 성채가 요새처럼 자리하였던 것이 도시의 기원이다. 눈치챌 수 있듯 레겐스부르크라는 도시 이름도 카스트라 레지나에서 유래한다. 당시 요새의 출입문 일부가 검게 그을린 유적으로 남아있고 거기에 덧대어 건물을 지은 포르타 프라에토리아(Porta Praetoria), 주차타워 건설 과정에서 요새 성곽이 발굴되어 주차타워 지하에 그대로 보존하여 개방한 다하우광장(Parkhaus Dachauplatz) 등에서 로마의 시간을 만날 수 있다.

포르타프라에토리아01.jpg
다하우광장01.jpg
좌: 포르타 프라에토리아 | 우: 다하우 광장


Scene 2. 대성당

로마 시대부터 이어지는 유서깊은 시가지는 신성로마제국 시기에도 크게 번영하였다. 그 중심에는 레겐스부르크 대성당(Regensburger Dom)이 있는데, 마치 쾰른 대성당을 보는 것 같은 두 개의 고딕 첨탑이 인상적이며, 내부 또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종교예술 작품 등으로 웅장하게 꾸며두었다.

대성당01.jpg
대성당02.jpg
좌,우 : 레겐스부르크 대성당


Scene 3. 구 시청사

레겐스부르크가 신성로마제국 시대에도 번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도나우강을 이용한 수상교통의 요지에 있어 상업이 활발한 제국자유도시였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수백년간 제국의회가 열리기도 했으니 요즘 개념으로 꿰어맞추면 제국의 입법수도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구 시청사(Altes Rathaus)에서 바로 그 제국의회가 열린 홀을 지금도 볼 수 있으며, 구 시청사 바로 옆 하이트 광장(Haidplatz)은 제국의회 참석차 레겐스부르크에 들른 '높으신 분들'이 묵은 유서깊은 호텔도 지금까지 남아있을 정도다.

구시청사01.jpg
하이트광장01.jpg
좌: 구 시청사 | 우: 하이트 광장


Scene 4. 슈타이네른 다리

도나우강을 통한 수상 교통뿐 아니라 도나우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건설로 육상 교통까지 원활하여 레겐스부르크가 제국의회 개최지로 손색이 없었다. 직역하면 '돌다리'라는 뜻의 슈타이네른 다리(Steinerne Brücke)는 약 1천년 전에 지어졌으며, 물살이 센 도나우강에 큰 다리를 놓는 것이 당시로서는 매우 고난이도 프로젝트였다. 슈타이네른 다리는 이후에 보수공사는 있었지만 원래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어서 "독일에서 가장 오래 된 석조다리"로 꼽힌다.

슈타이네른다리02.jpg
슈타이네른다리03.jpg
좌: 슈타이네른 다리 | 우: 다리에서 보이는 도나우강


Scene 5. 부어스트쿠흘

이렇듯 고대 로마부터 신성로마제국까지 이어지는 시간 여행의 끝, 슈타이네른 다리 바로 옆에 작은 오두막에서 구워 파는 부어스트는 레겐스부르크의 명물이다. '역사적인 소시지 키친'이라는 뜻의 부어스트쿠흘(Historische Wurstkuchl)인데, 12세기경 슈타이네른 다리를 건설할 때 인부를 위해 음식을 조리해 판매하는 식당으로 시작되어 중세부터 부어스트 전문 식당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따라서, 부어스트쿠흘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식당"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물론 갓 구운 부어스트의 맛이 일품이다.

부어스트쿠흘01.jpg
부어스트쿠흘04.jpg
좌,우 : 부어스트쿠흘

제2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현대적인 시가지로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시민들의 거센 반발로 구시가지는 전통적인 모습을 되찾았고,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영예도 안았다. 그 속에서 보존되고 새로 발굴된 로마 유적 또한 별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레겐스부르크에는 두 개의 세계유산이 존재한다.


울퉁불퉁한 돌바닥을 거닐며 시간의 흔적을 마주하고, 조용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부어스트를 먹다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 두 개의 세계유산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부어스트가 완성하는 그 여운은 꽤 오래 남는다.

부어스트쿠흘06.jpg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MX3SO7CFejnEeRg8_36lQf9ukB8.jpg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

[자세히 보기]

keyword
이전 18화내년까지는 세계 1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