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렵다.
나는 간다.
할아버지가
혼자서
남미에
그것도 한 달 동안이나.
이건 미친 짓이라는 것이 가족들 의견이다.
남미는 먼 곳이다.
만일 거기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난감해진다.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만도 꼬박 하루 이상이 걸린다.
70이 다 된 노인네가 거길 어떻게 혼자서 한 달을 여행하겠냐고,
정 가려면 가까운 동남아를 가거나. 남미를 꼭 가려면 한 보름씩 두어 번에 나누어 가라는 것이다.
나도 안다.
나는 늙었고, 남미는 멀다.
거긴 오지이다. 척박하다. 치안도 사회도 불안한 곳이다.
전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정보를 수집하고, 일정을 짜고, 항공권을 예약하고, 숙소를 정하고, 현지 여행사를 접촉하고, 티켓을 예약하고, 동선을 고려한 이동계획을 세우고, 무엇을 먹을지 정해야 한다.
일정과 단계별로 위험요인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대비를 해야 한다.
다 혼자 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왜 가려 하는가.
사실 그 질문을 한 것은 가족뿐만이 아니다.
나도 나에게 무수하게 던진 질문이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넌 왜 남미에 가는데....
남미는 너에게 무엇인데...
자발적 소외, 그 고독한 멍에
머지않아 나는 혼자가 될 것이다.
두려움이 있다. 무섭다.
시시각각 목을 조여 오는 죽음의 공포. 질병과 결핍과 소외의 두려움.
떠난다. 이 험한 세상에 나 홀로 어찌 살라고 나만 남기고 떠난다. 하필이면 가장 좋아하는 사람.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던 사람부터 아프거나 죽는다.
다음은 내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니체는 사자는 숲 속에 있을 때가 무섭다고 한다.
사자가 마을에 내려오면 더 이상 공포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때려잡으면 된다.
사자가 숲 속에 몸을 감추고 으르렁거리면 그것은 공포가 된다. 마을 사람들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두려움은 몸을 감추고 나를 겁박한다.
사자가 나오지 않으면 내가 들어가야 한다. 숲 속으로 들어가서 숨어있는 사자를 찾아야 한다.
사자와 맞서야 햔다. 그래야 공포가 소멸된다.
소외 그 혼자 남음에 대한 공포에 대항하여
나는 자발적 소외를 선택했다.
스스로 혼자가 되는 것.
씨줄과 날줄로 나를 연결하는 그 모든 관계를 끊고,
아무도 모르는 남미에서, 무인도의 로빈손 크로스처럼 한 달을 살아 보려는 것이다. .
남미는 나에게 거대한 섬이다. 외로운 무인도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안 통한다.
태평양 한가운데 떠있는 거대한 외딴섬 같은 남미로 나는 혼자 떠난다.
선제적으로 고독과 소외에 다가 서려한다. 두려움의 실체에 자발적으로 접근하려한다.
늙은 나를 배척하거나, 나만 남겨두고 모두 떠나거나, 요양병원 혹은 중환자실에 나 혼자 내동댕이 쳐지는
그 현실의 예행연습이다.
혼자가 되기.
나는 가려한다.
남미로.
모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며.
이 질식할 것 같은 공간에서
비상구 문을 열고 나서려 한다.
24 Feb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