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슬픈 자화상
할 수 있다(Yes, we can). 이 긍정적인 구호가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다고 외치는 책이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노예가 아니며,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현대인들은 과거의 노예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깊은 불안과 무기력에 시달리는 걸까요?
오늘 이야기할 책인 한병철 교수의 역작 <피로사회>는 이 기이한 현대의 비극을 철학적으로 날카롭게 해부한 책입니다. 얇은 두께지만 그 안에 담긴 통찰은 우리가 발 딛고 선 사회의 구조를 송두리째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자유가 치명적인 덫이라는 점입니다. 타인의 강요에 의한 착취는 저항이라도 할 수 있지만, 자발적인 자기 착취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더 잘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자신의 모든 에너지가 소진(Burnout)될 때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현대인 중에 번아웃 증후군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겁니다. 나 스스로가 채찍질해서 뛰고 있으니 스스로가 지치는 것도 쉽게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 성과사회에서 실패의 원인은 오로지 나의 노력 부족으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금세 우울해집니다. 긍정성의 과잉이 낳은 우울함은 바이러스처럼 밖에서 침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압박에 내가 비대해져 터져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자유롭다고 믿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라는 가장 악독한 주인에게 착취당하는 노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한병철 교수는 이 질주를 멈추기 위해 깊은 심심함과 피로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있는 힘, 즉 잠시 멈춰 서서 사색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 책은 열심히 사는 것에 지친 당신에게 건네는 값싼 위로가 아닙니다. 당신의 피로와 우울이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의 폭력적인 구조 때문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 치닫는다.... 가해자는 동시에 피해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