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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5분 서평 22화

[5분 서평]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미셸 투르니에

모험담 비틀기의 정석

by cm

오늘의 서평은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입니다. 대니얼 디포가 쓴 역대급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쓴 책으로 유명한 책입니다. 과연 <로빈슨 크루소>를 어떻게 비틀었을까요?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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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의 시작은 익숙합니다. 난파를 당한 로빈슨이 홀로 태평양의 외딴섬에 표류하게 되고, 살아남기 위해 문명의 잔재를 활용해 섬을 ‘스페란차(희망)’라는 이름의 작은 왕국으로 바꿔나가죠. 그는 규칙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자신을 총독이라 칭하며 질서를 세웁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로빈슨 크루소>와 유사합니다. 이후 슬슬 이 소설은 원작을 비틀기 시작하죠.


로빈슨은 섬에서의 삶이 길어질수록 점차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자신이 가 만든 규칙과 질서가 무의미하다고 느낍니다. 마침내 섬의 동굴에서 태아처럼 웅크린 채 새로운 평온을 경험하죠. 이 과정에서 로빈슨은 자신이 쌓아 올린 문명적 가치가 얼마나 덧없고 취약한 것인지 깨닫기 시작합니다.


이 순간! 결정적인 균열을 만들면서 소설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기 시작합니다. 방드르디, 즉 프라이데이가 등장하면서 로빈슨의 질서와 원작 소설 모두 완전히 깨지게 됩니다. 이 소설의 방드르디는 더 이상 순종적인 하인이 아닙니다. 그는 로빈슨의 문명적 시도에 폭소를 터뜨리고, 때로는 실수로 로빈슨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리죠.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주인과 노예의 위계에서 벗어나 대등한 동반자로 변하죠. 로빈슨은 방드르디를 통해 자신의 제국주의적, 문명중심적 태도를 돌아보게 되고 결국 자연과의 조화, 타자와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게 됩니다. 이 소설은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갑니다. 마지막 순간에 이 관계는 전복되고 맙니다. 두 사람이 모종의 일로 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저자인 미셸 투르니에는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얼마나 허망한지 집요하게 묻습니다. 또한 방드르디는 로빈슨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로빈슨은 방드르디 없이는 더 이상 자신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듭니다. 기존 원작 소설의 주종관계를 완전히 깨뜨려버리죠.


결국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인가? 누가 누구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식민주의 비판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외로움과 연대의 가능성까지 확장시키는 것이 이 소설입니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표류와 생존의 이야기를 넘어, 인간과 세계, 나와 타자, 문명과 자연의 경계에서 우리가 진정 돌아봐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현대적 우화라고 할 수 있죠.


물론 문제는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에 주인공의 내면이 강하게 나오는 소설일수록 만연체와 다수의 상징이 나오는 소설들이 많습니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로빈슨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일련의 과정은 꽤나 지루합니다. 쉬어가는 호흡도 없고 로빈슨 자신만의 깨달음을 계속해서 얘기하는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마치 혼자만 신나서 떠드는, 그런데 말투는 잔잔하기 그지없는 발표를 보는 느낌입니다. 다만 이 과정을 지나서 방드르디가 나타나는 순간에 도달하면 소설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죠.


쉬운 소설이라고 감히 말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이 책은 표류기라는 시작에서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까지 도달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익숙한 고전을 낯설게 읽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해 봅니다.


"나는 질서와 통제를 통해 살아남았지만, 그것들이 나를 살아있게 만든 것은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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