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의 욕망
한국의 경제에는 이런 단어가 있죠. '부동산 불패 신화'. 그중에서도 '강남 부동산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서울의 강남은 언제부터 형성된 걸까요? 역사적으로 서울의 강남은 서울의 중심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경기도 광주에 속했던 기간이 더 길었죠. 그래서 오늘은 강남의 형성을 다루고 있는 <강남의 탄생>을 서평 해보겠습니다.
<강남의 탄생>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상징적 공간이 된 강남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역사적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책입니다. ‘강남’이란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 한강 이남의 미개발 불모지가 어떻게 서울을 대표하는 도심이자 부와 교육, 권력의 상징으로 변모했는지, 이 책은 도시개발의 맥락과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맞물려 풀어내고 있죠.
이 책에서는 개발 이전의 강남, 경부고속도로와 제3 한강교 등 핵심 교통 인프라의 건설, 대규모 택지 조성과 수방 사업, 그리고 명문 학교와 국가기관의 이전 등 강남 개발의 주요 단계를 촘촘히 짚어주고 있습니다. 책에 의하면 1960~70년대 서울은 인구 급증과 주택난, 그리고 안보 문제(김신조 사건 등으로 인한 수도 방위의 필요성)에 직면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강북이 휴전선과 가까워 위험하다는 인식, 그리고 남베트남 멸망 등 국제정세의 영향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해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었다고 책에서 집어주고 있죠.
책의 저자들은 강남 개발이 성공할 수 있었던 5가지 요소를 얘기해줍니다.
도심과의 뛰어난 접근성(다리만 놓으면 곧바로 연결)
넓은 개발 부지와 정부 주도의 교통 인프라
반복되는 수해를 막기 위한 대규모 제방과 공유수면 매립
아파트 지구 지정 등 대규모 주택 공급 정책
명문 학교와 국가 기관의 강제 이전, 그리고 각종 특혜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중에서도 명문 학교와 국가 기관의 강제 이전이 가장 큰 영향을 준 게 아닐까 합니다. 허허벌판이었던 강남이 불과 10여 년 만에 경기고, 숙명여고 등 강북의 명문 학교와 대법원, 검찰청,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옮겨졌거든요. 자연스럽게 아파트 단지가 줄지어 들어서면서 강남은 곧 ‘잘난 아들’처럼 한국 사회의 부와 명예, 교육의 중심이 되었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강남의 위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강남의 탄생>은 강남 개발의 밝은 면뿐 아니라, 정권과의 유착, 정치자금 조성, 부의 대물림과 같은 그늘도 가감 없이 짚고 있습니다. 강남이 만들어낸 ‘아파트 공화국’의 풍경, 획일적인 도시 구조, 그리고 사회적 양극화의 문제까지 보여주죠. 따라서 강남의 탄생은 단순한 도시개발사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자 우리 사회의 욕망과 모순이 응축된 공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강남을 알면 한국 현대사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강남의 변천을 따라가다 보면 도시와 국가, 사회와 개인의 욕망이 어떻게 교차하며 오늘의 서울을 만들었는지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죠. <강남의 탄생>은 도시개발과 현대사,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강남이라는 공간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그 이면을 깊이 있게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강남의 신화와 현실, 그 빛과 그림자를 함께 조명하는 이 책은 서울이라는 도시와 대한민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교양서입니다.
“강남에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했던 꿈틀대는 힘과 욕망이 고스란히 담겼다. 강남을 안다는 것은 한국 현대사를 안다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