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대' 은퇴전
중동의 뜨거운 햇살 아래, 이라크는 한때 풍성한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던 '비옥한 초승달'의 중심지였다. 나는 그 땅에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군사외교관으로서 이라크 국방무관 역할을 맡았고 요르단을 겸임했다.
분쟁지역 살이 네 번째. 거의 그랜드슬램급 커리어다. 전쟁으로 흔들리던 이 나라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그 모든 시간은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이라크는 방문이 허락되지 않는 '여행금지국'이다. 그곳에 가려면 우리 외교부의 특별 허가가 필요하다. 나는 인천에서 12시간을 날아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다시 2시간, 그렇게 바그다드에 닿았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알라딘 조형물이었다.
문득 "사과를 훔치면 도둑이 되지만, 왕국을 훔치면 왕이 될 수 있다"라는 영화 알라딘의 재상 자파가 한 대사가 떠오르며, 이라크의 불안정한 현실이 묘하게 겹쳤다.
이라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이자 아라비안나이트의 무수한 이야기가 피어난 곳이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선 전쟁이 이 나라를 아프게 만들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전, 그리고 2차 걸프전인 이라크전. 거기에 2014년에 발호한 자칭 이슬람국가 IS의 위협까지. 나는 바로 그 교전이 한창이던 2015년 여름, 이라크에 부임했다.
전쟁의 여파는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이라크는 군사력 재건을 도모하고 있어 우리 방위산업 수출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한국 기업엔 호기로 다가왔지만, 정쟁과 부패로 인해 그 기회는 늘 불확실했다. 한 번은 우리 특수차량 생산업체가 계약했던 수억 달러 규모의 사업이 어느 야당 의원의 터무니없는 이의 제기로 무효가 되었다가 겨우 소규모 재계약으로 이어진 적도 있었다.
이라크는 부정부패가 심한 편이어서 그로 인해 무기 구매 역시 어려움을 겪는다. 대부분 계약은 '선 인도 후 지급' 방식이었고, 판매액 회수에 어려움을 겪지나 않을까 하여 우리 기업들은 이 방식을 꺼렸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국가가 자국 기업에 자금조달을 해주어 이라크 내에서 더 많은 수주를 따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2016년부터 우리나라 수주액은 많이 감소했다.
이라크 군수산업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 시절 두 차례 전쟁으로 거의 무너졌다. 산업부 중심으로 소구경 무기나 탄약 위주의 재건이 진행 중이며 헬기, 무인기, 국경 과학화 경계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수출은 여전히 군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내무부와 산업부로의 판로 다변화가 필요했다. 내무부는 IS 격퇴전에 참여하며 군보다 더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더욱 큰 시장이 될 수 있었다.
이라크와의 교류는 쉽지 않았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20억 달러에 달하는 수출 성과를 올렸지만, 이후로는 총리나 국방부 장관 등 수뇌부의 결정적 역할이 없으면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는 이라크 의사결정권자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더 큰 노력이 필요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의 여파 속에서도, 나는 그곳에서 희망을 보았다. 우리가 이라크에서 겪었던 좌절과 도전,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작은 성공들. 그 모든 것은 이라크라는 나라와 중동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