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면 수유를 루틴에 맞춰서 해야 한다. 분유를 먹일 수도 있고 모유를 먹일 수도 있지만 모두 루틴에 맞춰야 한다는 것은 똑같다. 아이의 ‘밥때’는 정말 중요한 것이다.
신생아 권장 수유량?
신생아 권장 수유량은 1회당 50~100ml이고 수유텀 시간은 2시간~2시간 30분입니다.
P의 힘듦은 수유텀부터 시작이었다. 앱에 기록하면서 시간에 맞게 수유하는 일은 나에게 너무 힘들었다. 아이가 직수를 거부하면서 유축 혼합 수유를 했던 나는, 그 당시에 정말 돌아서면 수유 돌아서면 수유였다.
모유 수유를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임신을 하면서 나는 알 수 없는 생각들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었다. 이왕이면 자연분만을 해야 하고, 이왕이면 모유를 오래 먹여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의무감이 들었다. 그렇게 해야 엄마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오랫동안 학습되어 내 무의식 속에 남아있던 사회의 생각들이었던 것 같다. 한동안 이런 생각 때문에 힘들어도 모유 수유를 고집했지만, 결국 분유로 넘어가게 되었다.
분유라고 해서 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1회 권장량이라고 정해져 있는 양만큼 먹지 않았고, 그 양만큼 먹지 않으니 분유텀 시간보다 훨씬 자주 밥을 달라고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올려놓는 교과서적인 분유텀 애플리케이션 사진을 보며, 나도 그것에 따라가고자 노력했지만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수유텀과 분유텀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읽게 되는 육아서와 전문가들의 강연들은 공통으로 ‘루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루틴 속에서 아이를 키워야 안정감을 느끼고 잘 자란다는데, 나에게 이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들의 말에 따라가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보니 문득 깨닫게 되었다.
'아! 맞아. 나는 루틴이 없는 사람이었어!! 그러니까 루틴이 있는 육아를 하는 게 너무 어려웠던 거야!!"
깨달음이 있었다고 해서, 육아의 힘듦이 사라지진 않았다. 대신 모든 게 내 탓 같았다. 엄마의 죄책감이 더 쌓여가기 시작한 거다. 아이가 장난감을 사달라며 고집을 부리는 것도, 밥을 제시간에 먹지 않는 것도, 잠을 일찍 자지 않는 것도.... 이 모든 것이 루틴 없는 나의 탓이었다. 내가 제대로 육아를 못 해서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이게 나인걸.'
루틴이나 계획 없이 살아왔던 내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었고, 오히려 감정적으로 더 힘들어지기만 했다.
그러다가 생각이 달라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모임에서 학습 플래너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한 사람이 자신이 그걸 못해서 학창 시절에 전교 1등을 못 해본 것 같다는 말을 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사람이 학습 플래너를 쓰지 않았지만, 공부를 잘하지 않았냐고 되물었었다.
'아!! 그래. 나에게 루틴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엉망으로 살아온 건 아니잖아. 8시에 아침을 먹어야 한다는 계획은 없지만, 그래도 아침에 식사한다는 정도는 생각해 왔잖아.'
치밀하게 짜인 루틴은 없지만, 나만의 흐름에 따라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루틴이 없는 엄마여서 장점인 것도 있었다.
바로 루틴이 없는 엄마여서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도 아이에게 화가 별로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정해놓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도, 돌발적인 일이 있어도 그냥 넘길 수 있다.
'화내지 않고, 즐거운 엄마가 오히려 아이의 정서와 창의성에는 좋은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육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의 성격은 다르다.
그리고 어떤 성격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
모든 성격은 장점과 단점이 있는 것이다. 그동안 육아하며 나의 부족한 부분만 생각하면서 아이에게 미안해했다. 하지만 미안해하기보다는 나를 알고 나의 방식대로 아이와 즐겁게 지내면 되는 것이었다. 분명 한계는 있지만 장점도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나는 엄마로서의 죄책감을 하나 내려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