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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결혼기념일, 나는 버려졌다

1. 봄날의 벚꽃처럼

by 레 자무레즈 Apr 01. 2025

2024년 4월 10일. 우리의 4번째 결혼기념일.

와이프가 나를 버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 날이었다.


우리의 4번째 결혼기념일은 공휴일이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덕분에 주말부부인 우리는 평일에 만날 수 있었다. 바쁜 와이프의 일정으로 인해 간만에 보게 된 터라,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압구정에 미리 예약해 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약속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해 와이프를 기다렸고 와이프는 언제나처럼 지각을 하고야 말았다.


"미안해, 차가 많이 막혀서..."

"괜찮아, 밥 먹으러 가자."


연애 4년, 결혼 4년 동안 늘 반복되던 패턴. 나는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기다리는 편이 나았기에 이를 두고 와이프에게 화낸 적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잠깐 기다리는 일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소박한 메뉴에 고급스러움이 살짝 가미된 점심식사는 훌륭했다. 그리고, 분홍 가디건을 입고 나온 와이프는 봄날의 벚꽃처럼 정말 예뻤다. 나를 보며 생긋 웃음 짓는 와이프의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서툰 손으로 사진도 찍어주었다.


"결혼기념일인데 이제 뭐 할까? 영화 보러 갈까?"

"아니, PT 예약해 둬서. 일찍 내려가려 해."


언제나 하고 싶은 게 많고 바쁘게 사는 와이프였지만, 그깟 운동 때문에 결혼기념일에 밥만 먹고 간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았다.


"1시간이면 가잖아. 그래도 오늘 결혼기념일인데 더 있다 가면 안 돼?"

"미안, 미리 예약해 둔 거라 어쩔 수가 없어..."


화내는 데에 미숙한 나는 차오르는 서운함을 가슴에 묻고 알겠다고 답했고, 근처 카페에서 간단히 차 한 잔을 마시고 헤어지기로 했다.


차는 뜨겁게 팔팔 끓여져 나왔건만, 다 마시는 데에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찻집에서도 와이프는 계속해서 시계를 쳐다보았다. 쫓기듯이 차를 마신 와이프는 서둘러 차에 올랐고 잠시라도 더 함께 있고 싶었던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그리고는 와이프를 꼭 끌어안았다.


조금만 이대로 같이 있자는 내 말과 미안하다는 와이프의 대답은 좁은 차 안에서 공허하게 교차되었다. 짧은 포옹 이후, 나는 차에서 내렸고 와이프는 조심히 가라는 말을 남기고 수원으로 떠났다.


버스 정류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와중에 흩날리는 꽃잎들이 발길에 스쳤다.


벚꽃이 만개하는 때에 결혼했던 우리는 4번째 결혼기념일에 벚꽃처럼 시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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