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폭우도 다래끼도 어쩌지 못한 인연
2017년 8월.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이었다.
저녁에 소개팅이 있건만 며칠째 계속된 다래끼는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점심식사 때 국을 쏟아 셔츠마저 엉망진창이 된 상태였다. 2년 차의 신입직원에게는 정말이지 정신없는 날이었다.
가까스로 늦지 않게 퇴근을 한 후, 근처 옷가게에 들러 새로 셔츠를 하나 샀다. 새로 산 셔츠는 빳빳하게 접어진 선들이 선명했지만 빨간 고추기름 범벅이 된 셔츠를 입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서둘러, 셔츠를 갈아입고는 약속장소인 안국역 1번 출구로 향했다.
안국역까지는 고작 10분 거리였지만, 미친 듯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구두는 물론 무릎까지 다 젖어버리고 말았다. 아직, 만나기도 전이지만 날씨며 내 상태 하며 시작부터 망한 소개팅이구나 싶었다.
안국역 1번 출구 앞에서 5분쯤 기다렸을까. 사진과는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사뭇 다른 여자가 다가왔다, 사진보다 더 예쁘고 환한 웃음을 가진 여자가. 내 심장은 그때부터 이미 요동치고 있었다.
저녁장소로 잡아둔 곳은 안국역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돈카츠집이었다. 돈카츠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우산을 뚫을 것 같은 빗방울 때문에 서로의 얘기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는 내 얘기에 귀 기울이고 방긋방긋 웃어주었다.
돈카츠를 먹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말주변 없는 나의 시덥잖은 이야기에도 그녀는 빵빵 웃어주었고, 우리는 처음 만났음에도 편안한 친구처럼 이런저런 얘기들을 부담 없이 이어나갔다. 잠잠하고 조용한 나와 달리, 그녀는 활기차고 밝았다. 나랑 정반대의 사람이지만, 너무나도 즐겁고 편안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사람을 꼭 잡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카톡을 남겼다.
"오늘 즐거웠어요. 다음에는 다래끼 다 나아서 갈게요. 또 봐요."
"네, 저도 즐거웠어요. 근데, 저 얼굴 많이 안 봐서 괜찮아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돌이켜보면 뭐 하나 매끄럽지 못했던 엉망진창의 소개팅이었지만,
폭우도 눈 다래끼도 어쩌지 못한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